2005. 6. 8. 17:38, Movie/영화를 보고
최근 들어 헐리우드에서는 널리 알려진 시리즈물들의 프롤로그 성격의 작품이 종종 만들어지고 있다. 즉 시리즈의 1편의 전 이야기들을 후속 영화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터미네이터 3', '엑소시스트 : 비기닝' 등... '스타워즈' 시리즈도 성격은 약간 틀리지만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헐리우드 영화 뿐만이 아니다. '링', '무간도' 처럼 아시아 영화 또한 그러했다. 이제 또 다른 한편의 프롤로그 영화가 개봉한다. 바로 '배트맨 비긴즈'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이 공개되었을 때 많은 관객들은 음흉한 고담시에 어울리는 컬트적인 분위기에 열광했다. 이런 여세는 역시 팀 버튼이 감독한 '배트맨 리턴'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조엘 슈마허 감독이 연출한 '배트맨 & 로빈'과 '배트맨 포에버'는 기존의 두작품에 비하면 외형만 커지고 내용은 없어져 버린 그져 그런 후속작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추락하던 '배트맨' 시리즈가 '배트맨 비긴즈'를 기점으로 다시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처음 '배트맨'의 후속작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하고 과연 어떤 감독과 배우가 선택될지 매우 궁금했었다. 결국은 '메멘토'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과 '아메리칸 사이코'의 크리스찬 베일이 캐스팅 되었다. 나처럼 아마도 많은 관객들은 캐스팅에 어느정도 만족을 했을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과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블록버스터 영화를 소화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영화가 공개된 지금 그것은 기우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영화는 브루스 웨인의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그리하여 박쥐에 대한 공포와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복수, 그리고 배트맨으로 변해가는 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최근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 아시아권 무술의 접목, 또한 슈퍼 히어로가 아닌 고뇌하는 인간적인 영웅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더이상 무작정 때려 부수는 영화는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브루스 웨인의 내적인 갈등을 중심으로 보여주다 보니 다소 긴장감은 떨어진다. 하지만 히말라야의 멋진 설경과 수련 과정, 아버지와의 드라마적인 요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중반 이후부터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영화로 변모한다. 배트맨의 의상과 배트카가 제작되고 악당을 물리치기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흥미로운 사실은 이 영화속의 배트맨은 거미에 물린 '스파이더맨'이나 유전자변이가 이루어진 '엑스맨', 외계에서 온 '슈퍼맨'처럼 초인간적인 인물이 아니라 상처를 입고 피도 흘리며 멍도 드는 매우 인간적인 영웅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배트맨으로 출연한 크리스찬 베일은 그 역을 충분히 소화해 내고 있다. '머셔니스트'이후에 다시 몸 만드는게 그리 쉽지는 않았을텐데 정말 자기 관리는 철저한 배우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 외에도 마이클 케인, 리암 니슨, 게리 올드만, 모건 프리만 등의 멋진 노장배우들의 연기가 여름용 블록버스터 영화이긴 하지만 너무 가볍지 않게 이 영화를 지탱해 주고 있다. 비중이 크지는 않았지만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 역으로 출연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라이너스 로치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가 전반적으로 너무나 어둡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이 영화가 마음에 드는지도 모르지만...) 물론 배트맨의 탄생 과정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보여 지기도 하지만 조금은 기존 시리즈의 히스테릭칼하고 유머러스한 악당의 모습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앞으로 계속 후속 시리즈가 만들어진다면 과연 어느 시점부터 다시 시작이 될까? 참고로 '배트맨 비긴즈'는 '배트맨' 1편의 바로 전 시점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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