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Corbusier (본명 : Charles Edouard Jeanneret, 1887~1965)


1887년 스위스 라쇼데퐁스에서 출생.
1965년 프랑스 로크브룬네에서 작고.
1920년대 국제주의 약식의 창시자 중에서 르 코르뷰제는 가장 상상력이 풍부하고 영향력을 많이 미친 건축가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컬리에 의하면 루이스 설리반의 노력을 뒤이어 진정한 인본주의적인 건축을 창조해낼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르 코르뷰제는 스위스의 프랑스어 사용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에서는 그림과 판각의 기예가 대대로 전승되어오고 있었다.
 
르 코르뷰제에는 처음에 시계를 판각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예술의 길에 들어섰다. 미스와 마찬가지로 그도 건축학교에서 정규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지만, 그의 천재성으로 말미암아 뛰어난 건축가가 되는데 필요한 것은 어디서든지 섭렵할 수 있었다.1909년부터 1910년 사이에 그는 파리에 와서 페레 밑에서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베를린의 페터 베린스로부터는 철골의 사용법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또 오토 바그너, 네덜란드의 베를라헤와도 접촉하게 되었다. 뒤이어 그는 연필과 스케치북을 손에 들고 아테네, 로마 등 지중해 연안의 건축을 탐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1917년에는 파리에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입체파와 접촉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10년경에 피카소와 브라크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적용하여 대상의 내외부를 동시에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르 코르뷰제는 이와 동일한 방식을 건축에 적용하여 내외부 공간의 상호관입을 위한 방법을 개발해 내었다.이 내외부 공간의 상호관입은 보로미니와 구조기술자의 건축에 의해 이미 예시된 바 있다. 그는 오장팡과 함께 1918년에 회화분야에서 순수파를 창립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매스와 윤곽을 서로에게로 흘러 들어가 상호관입하게 되는 부유하는 듯한 투명한 대상을 좋아하고 있음을 표방하였다.(순수파는 입체파와 네덜란드의 더 스타일 운동의 추상적 회화와 관련이 있다.) 1920~1925년 사이에 르 코르뷰제는 '새로운 정신'이라는 정기간행물을 간행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미학에 대한 원리를 발전시켜나가서 이를 1923년에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였다.

건축가로서의 르 코르뷰제의 경력은 1915년의 도면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도면을 보면 3개의 수평 슬라브들이 6개의 철근 콘크리트 기둥들에 의해서 지탱되어져 있으며, 이들은 계단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어져 있다. 이러한 구조는 구조 기술자들이 개발한 철근 콘크리트 골조를 건축적 표현수단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그러나 르 코르뷰제 활동의 핵심이 되는 것은 주택 문제이다. 종종 인용되는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이다'라는 그의 말은 상당히 오해를 받았다. 르 코르뷰제는 비행기가 날기 위해 설계되고, 배가 물을 건너 화물을 나르기 위해 설계되듯이, 주택도 특정한 목적에 기여하는 기계처럼 설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르 코르뷰제는 현대 건축을 위한 5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이러한 것들은 그가 지은 건물들의 여러가지 측면에 관련되어지고 있다.
1. 기둥 : 기둥은 주거의 개방공간을 통과하여 자유로이 세워져있어야 한다.이러한 기둥은 이미 존 내쉬와 앙리 라브르스트가 사용한 적이 있지만, 르 코르뷰제는 이 기둥을 모든 하중을 부담하는 골격으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벽체는 아무것도 지지하지 않은 상태로 남게 된다. 이것은 그의 두번째 원칙과 직접 연결된다.
2. 건물 골조는 벽체, 즉 외벽과 내부 칸막이벽 모두가 서로 기능적으로 독립되어야 한다. 윌리암 르 배런 제니, 빅토르 오르타, 오귀스트 페레 등은 이미 이 원칙에 맞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3. 개방된 평면 : 이것은 기능적 분리와 건축적 표현의 두가지를 동시에 수행하는 수단이 된다. 직선이나 곡선의 벽체들에 의해 내부공간이 형성되며, 이제까지와는 낯선 대담한 내외부 공간의 상호관입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건축공간의 처리는 개방 평면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개방평면을 유기적이고 신비로운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르 코르뷰제는 기술적이고 합리적으로 해석하였다.
4. 자유로운 외관 : 이것은 뼈대 구조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5. 옥상정원 : 라이트가 설계한 주택의 구성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주위를 돌아다녀야 할 필요가 있다. 르 코르뷰제의 주택은 위아래의 여러 다양한 시점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입체파가 추구하였던 바이다. 평지붕은 기능적인 용도로 전환되었으며 조각적 건축적 표현의 기반이 되고 있다.

르 코르뷰제 작품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평생을 통해 끊임없이 노력을 하면서 인체의 형상을 건축의 형태로 실체화시키는 방법을 발견해냈으며, 이렇게함으로써 그는 진정으로 의미 깊고 표현력이 풍부한 인본적인 건축을 창조해 냈다는 점이다. 1920년대 르 코르뷰제의 건물은 극적으로 표현되어진 활동을 담기 위한 긴장에 찬 그릇이었다. 따라서 이때의 건물들은 독립적인 조각작품처럼 처리되어 있기는 하였지만 처음에는 조각작품이 지니는 동적인 힘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이는 인체로부터 유추되는 근육적인 특성도 지니지 못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인간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지도 못하였다.
르 코르뷰제 작품의 두번째 발전단계는 1930~32년 사이에 지은 스위스 학생 기숙사에서 보여진다. 여기에서 르 코르뷰제는 2개의 상반되는 요소를 결합시키고 있다. 이 건물의 필로티 중 일부는 조소적이고 근육적으로 되어 있지만, 그 위의 박스 형태의 방들은 마치 공간을 에워싸는 얇은 막처럼 표현되고 있다. 1931년의 소비에트 궁전을 위한 계획안에서는 내용물을 감싸고 있는 표피의 개념이 완전히 버려지고 있다. 르 코르뷰제는 이 건물을 머리, 어깨, 허리, 엉덩이 등을 갖는 인체로 형상화시킴으로써 전체의 매스를 통합시키고자 했다. 그 결과 이 건물은 아프리카의 조각작품처럼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이미지가 기이한 모습으로 떠오르고 있다. 1952년에 완성된 마르세이유 아파트에 이르르면 그가 동적인 기념물을 만들기 위해 추구했던 모든 독창적인 요소들이 최종적으로 서로 결합되어지게 된다.
언젠가 르 코르뷰제는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건축은 시대정신의 산물입니다... 건축은 공간이며, 폭이며, 깊이이며, 높이이며, 체적이며, 동선입니다. 건축은 인간의 착상입니다. 건축은 머리속에서 생각되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그 디자인을 그려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도면이란 단지 여러분의 생각을 건축주나 시공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건축의 모든 것은 평면과 단면에 있습니다. 평면과 단면을 통해서 살아 숨쉬는 실체가 얻어지면 입면은 자연히 따라나오게 되는 것이며, 여러분이 디자인 센스를 조금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 입면은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물론 주택의 본래 목적은 그 안에서 살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입면 역시 성공적으로 디자인 되어야만 훌륭한 건축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많은 상상력 역시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쉬울수록 상상력은 더욱 많이 필요하게 됩니다. 건축은 구성입니다. 여러분은 제도판 위에서만 작업을 하는 양식주의자가 아닌 구성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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