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특이한 이름의 영화 하나가 개봉했다.
번지 점프를 하다...
영화에 대한 별다른 정보도 없이 시사회에서 본 이 영화는 당시로선 나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결국은 사랑이라는 진부한 주제였지만 매우 논란이 될 수도 있는 소재로 이렇게 감각적이고 신선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표현해 내었던 감독의 연출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김대승 감독은 전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영화로 다시 관객들에게 돌아왔다.

사실 개봉이 되기 전부터 난 이 영화에 대한 은근한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감독을 믿었기에...

감독은 국내영화에서는 아직은 활성화되지 않은 사극을 택했다. 더구나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미스테리 스릴러 형식과 외국의 슬래쉬 영화에서나 봄직한 유혈이 낭자하는 충격적인 장면들도 보여진다. 하지만 역시 전작처럼 이 영화에서도 사랑이란 주제는 빠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면 과연 인간은 재물에 대한 욕망 앞에서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나를 진저리치게 깨닷게 된다. 또한 영화의 배경인 후기 조선시대의 신분계급간의 갈등도 엿볼 수 있다.

걱정을 했었던 차승원의 연기는 기존의 코믹한 캐릭터를 극복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하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동안 그리 활발한 활동을 보이지 않았던 박용우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올가미'에서 보여주었던 마마보이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잠깐 등장했던 오현경씨의 강렬한 연기도 잊을 수 없다. 상당히 신경을 쓴 흔적이 보여지는 역사 고증과 배경 세트는 이 영화에 대한 믿음감을 더욱 갖게 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한 재미를 기대한다면 긴장감이 조금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스포일러가 한동안 인터넷에서 퍼져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물론 범인이 누구냐라는 것이 이 영화에 대한 흥미를 극대화시키는데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어쩌면 범인이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해답을 몰라도 감독이 말하고 하던 인간의 잔혹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까... 또한 이 영화의 진정한 반전은 어쩌면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 원규의 행동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 사람들이 살고있던 조용한 섬을 피비가 내리는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인간의 탐욕, 이기심과 잔혹성. 이것을 느꼈다면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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