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하고 소심해 보이는 윤서. 그의 음란한 상상은 정빈을 보게 되면서 시작되고 유기전에서 그 시대의 난잡한 책을 보면서 본격화된다. 이에 문장에 능한 실력을 이용하여 직접 음란한 소설을 쓰게 되면서 이야기는 흥미로와진다. 그 과정에서 삽화를 그리게 될 광헌이 가세하게 되고 그들의 소설은 점점 대담해져 간다. 과연 그들의 미래는...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자신의 신분적인 이유로 인하여 성적인 욕구에 억압받고 있다. 이런 욕구들을 아주 은밀한 방법으로 해소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윤서는 색안경을 쓰고 글로서, 광헌은 가면을 쓰고 삽화로서, 정빈은 윤서와의 만남으로서... 그런 과정에서 이야기는 얽히고 섥히면서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긴장감을 때로는 눈물을 준다. 그러면서 과연 사랑한다는 것과 음란하다는 것의 구분이 모호해져 버리는 상황까지 전개된다. 하기야 어쩌면 이 두가지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라고 볼 수 있으니...

'음란서생'은 기대만큼 음란하거나 웃음을 많이 주는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직접적이고 단편적인 웃음보다는 은유적이며 간접적이라 되씹어볼 수록 재미가 느껴지는 유머들이 곳곳에 내재되어 있다. 게다가 현재의 인터넷 통신 언어의 교묘한 접합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 온다. 윤서가 음란한 소설을 쓰는 것 자체도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야한 댓글들을 올리는 세태가 생각이 나기도 한다. 윤서의 음란함 또한 겉으로 내어 보이기 보다는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유를 남겨 주고 있다. 영화에서의 표현 방식도 극중에서의 윤서의 성격 그대로인 듯 하다. 윤서와 정빈의 멜러 코드도 사랑과 음란의 미묘한 상관관계를 표현해 주기 위한 중요한 스토리 라인으로 진행된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뛰어나다. 한석규는 정말 오랜만에 제 역을 만난 듯 하다. 거의 무표정하고 심각한 모습을 하고 이렇게 사람들에 웃음을 줄 수 있는 배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는 복잡미묘한 심리를 가지고 있고 때로는 뻔뻔스럽기까지 한 윤서의 캐릭터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한석규와 더불어 가장 멋진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바로 조내관 역의 김뢰하였다. 그의 마지막 대사는 정말 인상깊었다. 오달수의 감초 연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음란서생'은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하지만 많은 관객들이 좋아할 수 있을만한 영화는 아닌 듯 하다. 현재 보여지는 극과 극의 감상평들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실망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리 음란하지 않고 그리 웃기지 않기 때문일 듯 하다. 하지만 뭐 남들이야 뭐라고 하던 내가 좋으면 된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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