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캐릭터 수도 배, 제작비도 배, 스케일도 배. 모든것이 전작들에 비해서 많이 늘어났다. 그만큼 얻은 것도 있고 읽은 것도 있는 듯 하다. 감독이 바뀌었으니 변화가 없을 수 없었겠지.

일단 여름 블록버스터답게 재미면에서는 충분한 만족을 준다. 아마도 올해 지금까지 공개된 여름용 블록버스터 영화 중에 단연 압도적인 듯 하다. 늘어난 캐릭터들의 각각의 능력을 보는 재미 또한 만만치 않지만 짧은 런닝타임 내에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보니 캐릭터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느낌도 있고 산만한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사비에 교수와 매그니토의 카리스마는 여전했고 다크 피닉스 역시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키티도 귀엽고 엔젤도 멋졌다. 울버린, 스톰, 미스틱은 두말 하면 잔소리지. 물론 새로운 캐릭터의 빛에 가려 기존의 몇몇 메인 캐릭터들은 너무 홀대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싸이클롭스와 로그.

브라이언 싱어의 소수계층의 인권을 은유하며 돌연변이로서 표현한 조금은 심각한 블록버스터에서 브렛 래트너의 때로는 코믹스럽기까지 한 전형적인 여름용 블록버스터로 변모하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의 트릴로지를 마무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까지 뚝 떼어내어 알카트라즈를 도시와 연결해 버리기까지 하는데 뭘 더 바랄 수 있을까. 이제 남은건 이 시리즈의 외전 작품들이 언제 공개될지를 기다리는 것 뿐. 뭐 어쩌면 4편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반전은 어김없이 보여지고 있으니까...

난 매트릭스 시리즈를 그리 좋아한 편은 아니었다. 다음편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영화속 세계관을 분석하기 보단 그냥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구나 하면서 부담없이 봤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냥 단순한 재미로만은 볼 수 없었다. 매트릭스 시리즈와 이 영화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난 주저없이 이 영화를 택할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아마도 극과 극으로 갈리지 않을까 싶다. '매트릭스'의 액션을 기대하고 보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90% 이상은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이 영화는 액션영화라기 보다는 진지한 정치 스릴러물에 가깝다. DC코믹스의 만화를 기본으로 매트릭스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가 각본을 쓴 이 영화에는 여러가지의 장르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스릴러, 미스테리, 액션, 멜로, 풍자... 딱히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가 없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것은 바로 정치적인 풍자이다. 절대 권력속의 대중들의 관계가 그려지며 주인공인 V는 이런 권력의 본질을 해체하고자 한다. 2040년이 배경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또 미래도 알게 모르게 계속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배경속에 영화는 9.11 테러 이후 새로운 시점으로 테러리즘의 근원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중반까지는 지루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종반부의 사건들을 위한 이유있는 전개이며 마지막 장면은 이런 단점을 모두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트라팔가 광장을 가득 매운 가이 폭스의 가면들과 영국 국회의사당의 폭파 장면에서는 정말 가슴이 벅차 오름을 느꼈다.

한번도 제대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휴고 위빙은 목소리만으로도 V라는 캐릭터의 심리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나탈리 포트만도 삭발까지 마다 않고 V를 돕는 이비 역을 훌륭히 보여준다. 머리가 없어도 어찌나 이쁜지... ^^;; 존 허트가 연기한 히틀러를 연상시키고 이름까지 비슷한 아담 셔틀러도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역시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이 생각났다. 조만간 다시 한번 그 영화를 봐야 겠다. 참,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도 찾아 들어봐야지. 'Cry Me a River'도 ^^

DVD 출시할때 가이 폭스 가면을 사은품으로 주면 필히 구매할텐데... -_-;;

몬테 크리스토 백작, 셰익스피어 그리고 가이 폭스...

최근 들어 헐리우드에서는 널리 알려진 시리즈물들의 프롤로그 성격의 작품이 종종 만들어지고 있다. 즉 시리즈의 1편의 전 이야기들을 후속 영화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터미네이터 3', '엑소시스트 : 비기닝' 등... '스타워즈' 시리즈도 성격은 약간 틀리지만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헐리우드 영화 뿐만이 아니다. '링', '무간도' 처럼 아시아 영화 또한 그러했다. 이제 또 다른 한편의 프롤로그 영화가 개봉한다. 바로 '배트맨 비긴즈'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이 공개되었을 때 많은 관객들은 음흉한 고담시에 어울리는 컬트적인 분위기에 열광했다. 이런 여세는 역시 팀 버튼이 감독한 '배트맨 리턴'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조엘 슈마허 감독이 연출한 '배트맨 & 로빈'과 '배트맨 포에버'는 기존의 두작품에 비하면 외형만 커지고 내용은 없어져 버린 그져 그런 후속작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추락하던 '배트맨' 시리즈가 '배트맨 비긴즈'를 기점으로 다시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처음 '배트맨'의 후속작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하고 과연 어떤 감독과 배우가 선택될지 매우 궁금했었다. 결국은 '메멘토'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과 '아메리칸 사이코'의 크리스찬 베일이 캐스팅 되었다. 나처럼 아마도 많은 관객들은 캐스팅에 어느정도 만족을 했을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과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블록버스터 영화를 소화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영화가 공개된 지금 그것은 기우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영화는 브루스 웨인의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그리하여 박쥐에 대한 공포와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복수, 그리고 배트맨으로 변해가는 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최근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 아시아권 무술의 접목, 또한 슈퍼 히어로가 아닌 고뇌하는 인간적인 영웅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더이상 무작정 때려 부수는 영화는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브루스 웨인의 내적인 갈등을 중심으로 보여주다 보니 다소 긴장감은 떨어진다. 하지만 히말라야의 멋진 설경과 수련 과정, 아버지와의 드라마적인 요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중반 이후부터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영화로 변모한다. 배트맨의 의상과 배트카가 제작되고 악당을 물리치기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흥미로운 사실은 이 영화속의 배트맨은 거미에 물린 '스파이더맨'이나 유전자변이가 이루어진 '엑스맨', 외계에서 온 '슈퍼맨'처럼 초인간적인 인물이 아니라 상처를 입고 피도 흘리며 멍도 드는 매우 인간적인 영웅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배트맨으로 출연한 크리스찬 베일은 그 역을 충분히 소화해 내고 있다. '머셔니스트'이후에 다시 몸 만드는게 그리 쉽지는 않았을텐데 정말 자기 관리는 철저한 배우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 외에도 마이클 케인, 리암 니슨, 게리 올드만, 모건 프리만 등의 멋진 노장배우들의 연기가 여름용 블록버스터 영화이긴 하지만 너무 가볍지 않게 이 영화를 지탱해 주고 있다. 비중이 크지는 않았지만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 역으로 출연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라이너스 로치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가 전반적으로 너무나 어둡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이 영화가 마음에 드는지도 모르지만...) 물론 배트맨의 탄생 과정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보여 지기도 하지만 조금은 기존 시리즈의 히스테릭칼하고 유머러스한 악당의 모습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앞으로 계속 후속 시리즈가 만들어진다면 과연 어느 시점부터 다시 시작이 될까? 참고로 '배트맨 비긴즈'는 '배트맨' 1편의 바로 전 시점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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