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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 당신으로 인해 행복한 누군가가 있나요?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 많은 사람들은 또한 다들 각자의 삶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 속에 가지각색의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인간과 관계된 영원한 테마일 수 밖에 없는 사랑. 그 여러가지 사랑들 중 여섯커플의 일주일간의 모습을 엿보자. (사실 영화 광고시에는 4~5커플이 주가 되어 홍보가 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섯 커플(?)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1. 나두철(황정민)과 허유정(엄정화) - 소년 소녀를 만나다
'Opposite Attract', '반대가 끌리는 이유'같은 팝이나 가요들도 있듯이 의외로 서로 정반대되는 사람들끼리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꽤 많은 것 같다. 두철과 유정은 그 전형적인 케이스로 초반의 티격태격 대립하던 관계가 점점 사랑의 감정으로 발전하게 된다. 코믹적인 요소가 가장 많아서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영화 전편에서도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황정민의 캐릭터가 참 흥미롭다. 유정에게서 전남편이 게이라는 소리를 듣고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반문하는 그의 모습은 '로드 무비'에서 정찬과 격렬한 정사장면을 연출했던 그가 생각나 어이없는 웃음이 나 버렸고, 유정과 데이트하며 본 영화는 바로 황정민 자신이 출연한 '달콤한 인생'이었고 더구나 그가 출연한 장면이 보여진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그의 비중과 매력은 매우 컸으며 이미 제작 당시부터 어쩌면 이런 반응을 의도적으로 만들려고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유정역의 엄정화도 이제는 가수보다는 배우로서의 모습이 훨씬 어울려보인다.

2. 김창후(임창정)와 유선애(서영희) - 낭만파 부부
과연 이 세상은 사랑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현실과 이상사이의 괴리감을 이 커플을 보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더구나 경기가 좋지 않은 요즘이라 그런지 더더욱 그들의 처지가 공감이 갔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애처럽게 보이면서도 너무나 흐뭇한 것은 역시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현실은 조금은 제쳐두고 꿈을 꾸고 싶어해서인가보다. 게다가 이 커플의 애정표현은 정말 닭살이다. 어쨌든 로맨틱 코미디 답게 밝은 미래를 예상하게 만드는 결말이 위안이 된다.


3. 박성원(김수로)과 진아 - 천사의 도전
흔한 모성애 대신 이 영화에는 부성애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랑때문에 최고의 농구선수에서 퇴출당해버린 후 신용불량자들에게 전화로 돈 갚을 것을 닥달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던 성원에게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그의 딸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사랑의 감정을 다시 밝힌다. 그리고 그 딸을 위해서 마지막 슛을 날린다. 참, 하지원의 출연은 카메오 치고는 꽤 비중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김수로와 하지원의 커플로의 모습은 글쎄... ^^;;



4. 유정훈(정경호)과 임수경(윤진서) - 소녀의 기도
글쎄... 개인적으로는 가장 엉뚱했던 에피소드였다.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세속의 사랑을 포기하고 종교적인 사랑을 선택한다는... 내가 그리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어서인지 동감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은 든다. 그나저나 뒤늦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정훈만 불쌍하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서 결국 홀로 남게 되는건 정훈뿐이네... -_-;;




5. 곽회장(주현)과 오여인(오미희) - 곽씨네하우스
로맨스 그레이. 사랑은 젊은 사람들만의 감정이 아니다. 50이 되었든 60이 되었든 사랑의 감정은 모두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들은 그런 사실을 가끔은 간과하는 것 같다. 곽회장은 나이답게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도 않고 게다가 고집불통이기까지 하지만 결국은 그의 마지막 사랑이 될 수 있을 한 여인에게 더 늦기전에 그의 평생 우상이었던 오드리 햅번보다도 더 아름답게 만년 배우지망생인 그녀의 모습을 필름에 담아 그의 영화관에서 그녀를 관객으로 두고 평생 단 한번의 상영을 한다. 그래, 사랑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 사랑의 고백을 주저하지 말자.

6. 조사장(천호진)과 그의 친구 그리고 남자 가정부(김태현) - 아메리칸 불독
최근들어 국내 영화에도 동성애에 대한 소재가 간혹 보이기는 했지만 이런 상업성이 짙은 옴니버스 영화에 한 에피소드로서 소개된 것은 어찌보면 매우 파격적이다. 물론 이 에피소드가 이 영화를 소개하는 주요 에피소드 4~5개에 포함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민규동 감독의 전작이었던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면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소재 선택이란 생각도 든다. 현실에서는 거의 인정받을 수 없는 동성애. 그래서 사랑했던 친구와의 관계도 지속되지 못했고 현실에 타협하며 각자 가정을 이루고 살아갔지만 결국 조사장은 이혼을 하게 되고 그의 친구는 사업에 실패한 후 조사장에게까지 버림받고 결국은 자살을 택한다. 그나름대로 방식으로 조사장을 사랑했던 친구의 편지를 품에 안고 오열하던 조사장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아내도, 아들도, 친구도 떠나고 홀로남은 조사장에게 과연 사랑은 존재할까? 아니 이제 다시 따뜻한 피가 돌기 시작한 조사장의 마음을 누가 더 뜨겁게 지펴줄까? 감독은 이 에피소드의 결말에서 조금은 대중을 의식한 듯 하다. 아직은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서인지 상당히 절제되어 있는 마무리를 보여주어서 좀 아쉬운 느낌도 있다. 게다가 각종 홍보매체에도 이 에피소드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아무튼 개인적으론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픈 에피소드였다.

이 영화가 기획될 때부터 많은 화제가 되었었던 것이 사실이다. 민규동 감독의 6년만의 영화라는 것도 그랬지만 한국판 '러브 액츄얼리'라는 타이틀이 입에 오르 내리면서 과연 어떤 영화가 탄생할지 궁금증을 끌어 모았다. 이제 영화는 공개되었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굳지 외국 영화제목을 들먹이지 않아도 될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진지하고 사랑스러우며 현실적이다.

9개월동안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는 감독의 노력 덕분에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 옴니버스 영화의 단점을 잘 극복하며 각 에피소드들간의 연결도 매우 자연스러웠다. 배우들 또한 영화의 분위기에 맞는 캐릭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은 아마도 두철이 선애에게 했던 말로 모두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당신으로 인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당신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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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동막골 :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 좋은 영화

각박한 현실에서 떠나 어느 깊은 산골 마을에서 아무런 걱정없이 살고 싶어하는 건 아마도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구나 그 현실이 전쟁상황이라면 더욱 더 하겠지.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전쟁 당시 우연히 강원도 깊은 산속에 있는 동막골이라는 부락에 도착하게 된 국군, 인민, 연합군과 부락 사람들에 대한 영화이다. 원래는 이 작품은 대학로에서 오랫동안 상연되었던 장진 감독이 연출했던 연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박광현 감독은 첫 장편 영화 연출이긴 하지만 매우 안정적이고 세련되게 연극적이며 환타지적인 원작의 요소들을 스크린 화면으로 옮겨 놓았다. 전쟁이라는 배경 속에서 너무 심각하게 접근하기 보다는 원작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환타지 형식으로 매우 밝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요소는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지만 영화 곳곳에 적절하게 사용된 CG효과가 큰 몫을 한 것 같다. 그래서 비극적인 결말 조차도 뜨거운 눈물과 따뜻한 미소를 함께 짓게 만든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두명의 주연배우들이 부각되기 보다는 출연하고 있는 모든 배우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서 안정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도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는 중요한 요소였다. 화제가 되었던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음악 자체로는 훌륭했지만 기대에 비해서는 일부 장면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 무료, 유료 시사회로 개봉 전에 23만이나 이 영화를 봤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만큼 제작사에서도 이 영화에 대해 자신이 있기에 입소문을 믿는 듯 하다. 과연 그 입소문은 믿을만 한 것이었고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 좋은 영화를 본 것 같다. 영화 관람시 받은 OST를 들으며 다시 한번 감동에 빠져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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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 마이클 베이에게 뭘 더 바라겠어

사실 그리 기대하진 않았다. 아니 그래도 혹시나 이번엔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바램은 있었다. 그러나 역시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마이클 베이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역시 난 그의 영화와 맞는 것 같진 않다. 아무리 박스오피스 최고의 흥행력을 과시한다고 해도 난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착찹한 마음이 들곤 했다. 물론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임을 알고 보았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래도 '나쁜 녀석들'이나 '더 록'은 괜찮았었는데...

그의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아일랜드'처럼 컸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그의 영화들은 여름용 블록버스터 답게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 통쾌하고 시원한 액션과 긴장감 넘치는 화면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블록버스터 치고는 너무 진지한 소재를 택했다. 인간의 DNA로 부터 복제된 클론이라...

일단 블록버스터 영화로서의 '아일랜드'는 손색이 없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액션과 추격장면은 2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을 금새 지나가게 한다. 중반까지는 두 주인공의 자아를 찾게 되는 과정이 긴박감있게 그려지지만 그들이 탈출하여 LA로 이동한 후에는 전반부의 진지함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총탄과 폭발, 폭력과 학살이 난무하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로 변모한다. 차라리 전반부의 분위기를 좀 더 살려 미스테리 스릴러적인 영화가 되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사실 난 처음 '아일랜드'의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 미국주의 영화의 대표 감독 중 하나인 마이클 베이 감독이 부시 대통령을 위해서 영화를 만드는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아무튼 인간 복제라는 민감한 소재로서 단순히 때려부수기만 하는 영화를 만들어낸 것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소재도 이제 갈 때까지 가 보자는 심산인 것 같다. 어쩌면 이런 소재에 대한 나의 민감한 반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블레이드러너'여서인지도 모르겠다.

클론들을 위해 모든것을 아니 목숨까지 희생하는 맥코드나 방금 전까지만해도 눈 깜짝하지 않고 클론을 처형하던 알버트가 갑자기 돌변해서 클론들을 위해서 싸우는 것도 내 상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 설정이었다. 링컨 6 에코와 톰 링컨이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도 어찌 그리 자신을 클론을 직접 보게되는 것이 간단한 문제일 수 있는 것인지... 게다가 마지막의 마이클 베이 특유의 어설픈 감동주기까지...

여름용 블록버스터 영화에 뭘 더 바라냐고?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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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쟁 : 스필버그, 당신의 능력은 어디로 갔나요.

인류에게 3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건 인간간의 전쟁이 아니라 인간과 외계인과의 전쟁이 될지도 모르겠다. 외계인과의 전쟁이라... 지금에도 과연 일어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데 벌써 100년도 전인 1898년에 '우주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썼으니 H.G. 웰즈는 정말 천재였던 것 같다. 아시모프와 함께 가장 유명한 SF 소설가 중 한명인 그의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기고 있으면서 영화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우주 전쟁'은 이미 50년대에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는 고전 중 하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톰 크루즈까지 이 작품에 관심을 보여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많은 영화팬들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기대는 단지 기대일 뿐이다.

스필버그의 '우주 전쟁'은 외계인이 왜, 어떻게 지구를 침략하는지는 관심이 없다. 엄청난 위력을 보이던 외계인들이 갑자기 무기력하게 된 것도 모건 프리먼의 단 몇마디 나레이션으로 알려준다. 이 영화의 주제는 인간과 외계인과의 전쟁이 아니라 한 가족의 유대관계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혼하여 혼자 살고 있는 존재감이 상실되어버린 가장 레이에게 아들과 딸이 맡겨진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니 인류에게 닥치는 외계인의 지구 침공이 시작된다. 엄청난 제작비에 걸맞는 화려한 볼거리와 특수효과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이런 대재앙속에서 레이는 그의 아들과 딸을 보호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그리고 결국은 가장으로서의 위치를 다시 확인시키고 그의 두 자식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이미 언급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원작에서의 외계인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나 인간들의 필사적인 대항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외계인의 침공에서 외계인들보다 더 무서운 인간들의 모습도 보여진다. 이런 과정에서 스필버그 감독은 이야기 전개의 당위성이나 치밀한 구성보다는 파괴되어가는 지구의 모습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그로 인해 결말의 허무함은 피할 수 없어보인다. 사실 스필버그의 최근 영화들이 예전에 비해서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보이곤 한다. 벌어놓은 일을 수습하지 못하고 대충 마무리한다고나 할까... 또한 번뜩이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보다는 기존 작품이나 실제 일어났던 일들을 바탕으로 하는 영화들이 많아진 듯 하다. 이젠 그의 창조적인 상상력에도 한계가 온 것인지.

개인적으로 이런 비슷한 류의 재난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딥 임팩트'이다. 이 영화에는 인류에게 닥친 재앙을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이 있고, 또 너무 감상적일 수도 있지만 그 재앙속에서 다시금 피어나는 사람들간의 유대감과 인류애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주전쟁'을 보고 나니 과연 한 가장의 존재감을 회복시켜주기 위해서 그렇게 엄청난 전쟁을 보여줬어야 했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난 이 영화에 공감할 수 없었다. '조스', '인디아나 존스', '칼라 퍼플', '태양의 제국'같은 영화들을 만들때의 스필버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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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 : 최고의 배트맨 시리즈

최근 들어 헐리우드에서는 널리 알려진 시리즈물들의 프롤로그 성격의 작품이 종종 만들어지고 있다. 즉 시리즈의 1편의 전 이야기들을 후속 영화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터미네이터 3', '엑소시스트 : 비기닝' 등... '스타워즈' 시리즈도 성격은 약간 틀리지만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헐리우드 영화 뿐만이 아니다. '링', '무간도' 처럼 아시아 영화 또한 그러했다. 이제 또 다른 한편의 프롤로그 영화가 개봉한다. 바로 '배트맨 비긴즈'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이 공개되었을 때 많은 관객들은 음흉한 고담시에 어울리는 컬트적인 분위기에 열광했다. 이런 여세는 역시 팀 버튼이 감독한 '배트맨 리턴'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조엘 슈마허 감독이 연출한 '배트맨 & 로빈'과 '배트맨 포에버'는 기존의 두작품에 비하면 외형만 커지고 내용은 없어져 버린 그져 그런 후속작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추락하던 '배트맨' 시리즈가 '배트맨 비긴즈'를 기점으로 다시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처음 '배트맨'의 후속작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하고 과연 어떤 감독과 배우가 선택될지 매우 궁금했었다. 결국은 '메멘토'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과 '아메리칸 사이코'의 크리스찬 베일이 캐스팅 되었다. 나처럼 아마도 많은 관객들은 캐스팅에 어느정도 만족을 했을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과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블록버스터 영화를 소화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영화가 공개된 지금 그것은 기우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영화는 브루스 웨인의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그리하여 박쥐에 대한 공포와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복수, 그리고 배트맨으로 변해가는 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최근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 아시아권 무술의 접목, 또한 슈퍼 히어로가 아닌 고뇌하는 인간적인 영웅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더이상 무작정 때려 부수는 영화는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브루스 웨인의 내적인 갈등을 중심으로 보여주다 보니 다소 긴장감은 떨어진다. 하지만 히말라야의 멋진 설경과 수련 과정, 아버지와의 드라마적인 요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중반 이후부터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영화로 변모한다. 배트맨의 의상과 배트카가 제작되고 악당을 물리치기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흥미로운 사실은 이 영화속의 배트맨은 거미에 물린 '스파이더맨'이나 유전자변이가 이루어진 '엑스맨', 외계에서 온 '슈퍼맨'처럼 초인간적인 인물이 아니라 상처를 입고 피도 흘리며 멍도 드는 매우 인간적인 영웅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배트맨으로 출연한 크리스찬 베일은 그 역을 충분히 소화해 내고 있다. '머셔니스트'이후에 다시 몸 만드는게 그리 쉽지는 않았을텐데 정말 자기 관리는 철저한 배우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 외에도 마이클 케인, 리암 니슨, 게리 올드만, 모건 프리만 등의 멋진 노장배우들의 연기가 여름용 블록버스터 영화이긴 하지만 너무 가볍지 않게 이 영화를 지탱해 주고 있다. 비중이 크지는 않았지만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 역으로 출연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라이너스 로치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가 전반적으로 너무나 어둡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이 영화가 마음에 드는지도 모르지만...) 물론 배트맨의 탄생 과정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보여 지기도 하지만 조금은 기존 시리즈의 히스테릭칼하고 유머러스한 악당의 모습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앞으로 계속 후속 시리즈가 만들어진다면 과연 어느 시점부터 다시 시작이 될까? 참고로 '배트맨 비긴즈'는 '배트맨' 1편의 바로 전 시점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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