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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스털링 (James Stirling)
James Stirling (1926 ~ 1992)

1926년 4월 22일 영국 글라스고에서 출생.
1992년 6월 25일 런던에서 작고
그의 아버지는 선박 기술자였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꽉 짜여진 배 형상의 근대 디자인에 대한 그의 애착이 더 깊어진 것 같다. 그의 학구였던 C.로웨의 작품 성향 역시 그의 후기 작품에서 나타나는 고전적 인본주의적 성향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 1953년 런던을 중심으로 리용스와 이스라엘, 엘리스 등과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곳에서 J고완을 만나게 되었다. 1956년부터 당시에 지배적이던 국제주의 양식과는 전혀 무관하면서도 독특한 일련의 근대적인 건물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햄 코몬에 있는 주택들(1955~8), 케임브리지의 처칠 대학 공모전(1959), 라이체스터 대학 공학관(1959~63) 등이다. 이들 작품은 붉은 벽돌과 판유리로 된 온실이 서로 극적인 대조를 이루면서 형태적 정교함이 대담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작품들이었다.
 
1963년부터 1971년까지 그는 혼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 시기는 많은 독창적인 디자인들이 많이 나온 때였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 회관(1964~7), 성 앤트류 대학교의 학생들을 위한 주거단지 (1964~8), 미들레스브로에 있는 도르만 롱 본관 계획안(1965), 하슬레메레에 있는 올리베티 훈련학교(1969~72), 뮌헨에 있는 지멘스 AG계획한(1969), 데르비 시 중심가 계획안(1970) 등이 있다. 지멘스 AG 계획안과 시 중심가 계획안은 레온 크리어가 보조 건축가로 참여했고, 1968~70년 사이에 만들어진 드로잉들에서도 크리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1971년부터 그의 보조 건축가인 M 빌포드와 함께 파트너 관계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밀톤 케이네스 소재의 올리베티 본관 계획안(1971)과 성 앤드류 대학교 소재의 미술센터 계획안(1971), 뒤셀도르프 소재의 노르드라인 베스트팔렌 미술관 공모전과 퀼른 소재의 발라프 리하르트 박물관 공모전 출품작(1975), 슈투트가르트 주립 미술관 확장 계획안(1977,1984년 개장) 슈투트가르트 소재의 뷔르셈베르크 주립 극장 신축 건물 등을 들 수 있다.
 
1960년부터 예일 대학교 건축과 교환교수이자 비평가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1968년 로웨 맨하탄 공모전에 참가했다. 이 때부터 그의 이름이 미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의뢰작품들 중 대표작으로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있다. 휴스턴에 있는 리스 대학교 건축과 건물 확장공사(1979~81), 메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 포그 미술관의 날개 부분의 신축 건물(1979), 뉴욕의 콜림비아 대학교 화학관(1981) 등.
몇몇 비평가들은 1970년대 이후의 그의 작품이 형태주의적 성향으로 나간다고 평가했다. 슈투트가르트의 주립 미술관이나 테이트 화랑 확장 계획안같은 작품은 포스트 모던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그의 전 작품을 관찰해 보면 일관된 통합성을 느낄 수 있다. 작품에서의 변천과정이 중요한 의미를 띄고 진행된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는 르 코르뷰지에가 자신의 롱샹 교회를 통해 변이가 일어나듯 그의 초기 작품 역시 이와 비견되는 유사성을 가지며, 일종의 자유로운 행동이 표현적인 제스처로 표출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의식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절충주의적 참조물과 형태적 구조체들을 동등하게 사용하고자 했다. 모든 예술적 창조가 지니는 의도적인 성격을 받아들이면서 1945년 이후의 많은 건축물들을 병들게 했던 위선적인 결정주의로부터 그 자신 스스로 자유롭고자 했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역사성의 요소는 그의 초기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근대성의 요소 못지 않게 자의식적인 것이었다. 그의 작품이 갖는 중요성도 바로 이같은 정직성과 편견의 배제로부터 온 것이다. 여러 의뢰인들이 저마다 요구하는 것들에 부응한 그의 비 예언적인 성격은 그가 만드는 작품들을 젊은 세대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건축철학
건축에서의 단편화, 다극화, 다양화, 상대화, 꼴라주, 모자이크화 현상을 반영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다양한 건축적 흐름을 이해하는 단서로서 제임스 스털링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임스 스털링에 관한 작품적 흐름을 바라보면, 현대건축의 흐름을 대변하는 듯,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고, 이런 다양함을 하나로 흡수해 통일성있는 형대로 만들어 가는 저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살펴보아야 한다.
 
스털링은 자신이 다녔던 리버풀 대학에서의 당시 분위기에 대해, '현대건축이 새로워지려는 혁신적인 분위기'를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대학 내에서 토론과 논란의 소용돌이로 비쳤다는 것이다. 스털링이 대학을 다닌 기간이 1945년~50년까지이며, 다시 2년간 지역계획을 연구하는 기간을 갖는다. 이 기간(1945~52년)동안, 유럽대륙으로부터 모더니즘의 회오리가 영국으로 건너와, 리버풀 대학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전쟁이후 주택 부족에 대한 정부의 노력으로 1946년 신도시법 마련에 의해 주거문제가 관심거리가 된다. 스털링도 프리케스트 콘크리트에 의한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계획안 등, 주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실무를 시작하면서 르 꼬르뷰제의 영향을 받았던 스털링은 3년 뒤인 1959년 작품이 레스터 공과대학 건물에서는 러시아 구성주의에 관한 태도를 받아들인 것으로 말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전혀 관련이 없는 듯한 다양한 건축적 형태를 설계해 온 스털링에게서 현대건축의 다양한 측면을 보게 된다. 1970년대 이후의 제임스 스털링의 작품은 형태주의적이며, 최근에는 포스트 모던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그 스스로는 탈근대주의적(포스트모던) 건축은 표면적인 것에만 관련된 것 같은데, 자신은 말하기를 건축이 공간과 깊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스털링의 현대건축에 대한 신축성있는 건축적 신념을 형성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스털링의 작품은 모국인 영국보다 미국, 독일 등 해외에서 더욱 평판이 높다. 스털링은 그의 최근 작품중에서 포그 박물관, 노이에 슈타트 미술관, 테이트 미술관의 증축부분인 클로어 미술관등 세작품을 통해 세계 건축계에서의 스털링의 건축적 위치를 확립하였다. 위의 3작품 뿐만 아니라, 스털링이 작품을 시작한 이후의 모든 과정을 바라보면 다양한 건축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대주의나 탈근대주의(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가 자연스럽게 융합되었고,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다양하고 흥비를 유발하는 형태와 공간을 만듦으로서, 여러 도시에서의 건축물을 완성한 건축적 능력이 평가되었다. 그 자신은 포스트 모더니스트로 설명되는 것을 거절한다. 그는 자신을 포스트 모더니스트라고 생각지 않는다. 포스트 모던 건축에 흥미는 갖고 있지만 이에는 속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근대건축쪽에 보다 공감을 갖고 있는 듯해 보인다.
 
신선한 영감, 일찌기 없었던 혁신성, 자유로운 발상으로 1970년대 건축계에 강렬한 주목을 받았었다. 그가 어떤 배경하에서 작업을 하고 어떤 작품들을 설계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현대 건축에서의 다양한 이슈가 변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아래, 그의 건축적 관심사항에 따라 현대건축의 한 단면을 바라보기로 한다. 스튜트가르트 이래로 미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일본 등에서 국제적인 활동을 하였었다.

그는 왜 작품이 그렇게 많이 변하는가 하는 질문을 최근에 받고는, "변화는 건전한 것이며, 자신의 작품은 많이 변화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그가 초기에 설계한 작품과 현재의 작품사이에는 유사점이 많다고 말한다. "다만 과거의 미래를 왕복하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는 스스로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우연히 어떤 스타일을 취하게 되거나, 어떤 것은 작업과정에 일치되어 하나의 양식이 되기도 하고, 또 심사숙고해서 하나의 양식을 만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가 어떠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의 진정한 건축적 이념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떠한 건축적 배경과 생각이 이렇도록 다양한 것을 만들어 갔을까? 현대건축에서의 국제화를 지향하여야 하는 한국의 건축가들에게도 스털링이 주는 건축적 효과의 교훈이 있다. !!주의라 하는 것은 역사적인 단서나 현대의 건축적 단서를 활용하는 일이기도 하다.
 
스털링은 자신의 작품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능적 해석과 함께 대지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으로부터 "불가피하게 태어나는" 것으로 말하고 있지만, 작품들에는 어떠한 형식주의나 양식이 존재하고 있다. 강력한 "형태적 표현주의"라 할만한 그의 작품들은 60년대 아방가르드로 영웅적인 대접을 받았으며, 현재는 이국적인 것, 꼴사나운 것으로 취급당하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그의 건물들은 우아한 것과는 거리가 먼 작품, 건축적으로 다양한 패션 변화에 따른 희생자쯤으로 여긴다.
 
스털링 스스로도 다른 건축가들은 시리즈 형식으로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자신의 작품은 현대건축의 진화론적 국면을 드러내는 상당히 !!적인 것으로 또한 올리베티 훈련원과 같이 주상적 모던(심지어는 하이테크)으로부터, 라이스대학교 건축대학교의 구상적이거나 가끔 전통주의적인 것에 이르기 까지, 극단적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변화는 개업을 한 이후에도 그랬으며, 슈튜트가르트 미술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극단적인 방법들이 대립을 하면서도 균형을 취하며 같은 건물에서 충돌하고 있다.

형태요소
보행로는 보행인의 흐름을 유도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순환체계를 뜻하며, 원칙적인 구성요소는 접근방법, 입구형성방법, 통로의 구성, 통로와 공간과의 관계, 그리고 통로공간의 구성방식 등으로 나누어진다.
기본형의 추구는 기본형의 그 변형을 유추하는 내용으로서 차원의 변화, 기능적 특성에 의한 변화, 국부강조, 그리고 환경성으로 구분된다.
이중적인 요소란 상충하는 두 형상이 병립하거나 성격상 같이 공존할 수 없는 형태요소가 첨가되어 있는 경우를 뜻하며, 기하학의 형태적 상충은 대립, 포함, 중첩, 분리라는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1. 통로공간은 둘러싸인 공간, 긴 통로공간, 암시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류되었다. 스털링의 작품에서 보행로가 담당하는 역할은 블럭의 형태 및 배치 입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기본형의 추구는 기하학적 기본형에서 부분삭제를 하는 것은 보행공간을 형성하기 위해 채택되며, 기하학적 형태의 조합은 스털링이 지니고 있는 신고전주의적인 경향을 시사해 주고 있다.
3. 이중적인 요소는 기하학적 형상의 대립과 세부장식의 개념적인 대립으로 분류되며, 전자는 건물의 배치, 외부공간의 형성, 그리고 보행로의 형태에 영향을 주지만, 후자는 근대성이란 개념과 역사적 인유라는 개념사이의 대립이라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와같이 스털링은 보행인에 대한 비중을 크게 두고 있으며, 건물의 형태는 기존 건물에 내재된 형태와 작가 자신만의 형태를 접목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스털링의 작품은 유럽 신합리주의 작가들과도 연관되며, 스털링과 이들과 공통된 견해는, 유형과 변형, 기존 도시조직의 유지, 가로와 공공영역의 중시 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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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로 시자 (Alvaro Siza)
Alvaro Siza (본명 : Alvaro Joaquim de Meis Siza Vieira, 1933 ~ )

1933년 6월 25일 포르투갈 마토신호스 출생
마토신호스라는 도시는 포르토 가까이에 위치해 있으며, '포르투스꼴레'라는 고대 로마인들의 정착지 위에 건설된 항구도시로서, '포르투갈'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시이자는 1949년에서 1955년까지 포르토대 건축학부에서 수학하였고, 1954년 자신의 학업을 마치기도 전에, 마토신호스에 4채의 주택을 설계하는 첫 작품을 남겼으며, 같은 해, 그는 포르토에서 개인 설계 사무실을 열었다.
1955년~58년, 건축가 페르난도 타보리 밑에서 일을 했다. 1966년~69년에는 포르트의 미술상급학교 건축학과에서 교편을 잡았고, 1976년에 '건축시공'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버드대 건축설계 대학원, 펜실바니아대, 보고타의 로스안데스대, 그리고 로잔공예대 등의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있다.그 외에도 서반구의 미국, 콜롬비아, 아르헨티나를 비롯하여, 그의 인접국가인 유럽의 스페인, 독일, 노르웨이, 화란,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영국 등의 수많은 대학과 국제회의의 초청강사로도 일해오고 있다.
그는 1962년에 화가 Maria Antonia Marinho Leite와 결혼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현재 건축학을 공부하는 아들 알베로와 연극을 공부하고 있는 딸 조안나가 있다. 부인 시이자 여사는 1973년 사망하였다.
수상경력
국제예술비평협회 포르투갈 지부로부터 건축상 수상(1982)
포르투갈 스페인 '콜레지오드 아키텍터'로부터 금메달(1987)
알바 알트 재단으로부터 금메달(1987)
하버드 대학 도시계획과의 프린스 오브 웰즈상
EEC/바르셀로나의 미스 반 데어 로에 재산의 유럽 건축상
프리츠커 건축상(1992)
발렌시아 대학 명예 박사(1992)
로잔공예대 명예 박사(1993) 등

건축 배경
Alvaro Siza는 포르투칼의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건축가이다. 지역건축의 표현적인 방법으로 그는 자신의 근대적인 형태언어의 발전을 통해 신중한 의뢰를 받는다. 그의 단순한 기하학과 재료의 변형으로 그의 건축은 르 꼬르뷔제, 브루노 타우트, 그리고 미스 반 데 로에에 의한 슈투트가르트의 바이센호프 단지 같은 그런 고전적 모더니즘의 프로젝트를 생각나게 한다. 시자는 아마 포르투칼 주거단지의 인기있는 건축에다 지중해 정취를 가진 새로운 요소를 부가한다. 시자의 힘은 지중해 빌라의 세련된 건축과 다수의 주거단지가 가지는 빈약한 미간의 사이를 연결시키는데 있다. 시자의 작품을 그렇게 중요하게 만드는 것은 형태적인 실험과 공적인 의뢰를 정확하게 결합시키는 이 능력이다. 시자의 양식상으로 가장 발전된 프로젝트는 villa de condo에 있는 1982 Borges & Irmao Bank이다.
 

알바로 시자의 건축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보지 않은 자에게 있어서, 시자는 스케치로 볼 수 있는 멋진 터치에 의해 여러가지 보조선을 교차시킨 평면도에 의해 어떤 전조를 내포한 것 같은 건물의 사진에 의해 잊을 수 없는 건축가이다. 상세한 숫자를 기입한 도면이나 벽 그리고 천장의 기묘한 우묵을 찍은 부분, 사진에서는 그 건물이 촉지성이 풍부하다는 것이 추측된다. 자칫하면 그것은 속 깊은 구멍을 연상케 하는 음영을 띠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벽이나 천장이 휘어서 공간 속에서는 여러겹으로 벽이 겹쳐져 있다. 이것은 육감적인 것 조차 엿보이게 한다. 계단은 공간의 상하를 이어주는 기능적 장치라기 보다는 보행의 유도장치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모서리, 구석에서는 불의의 만남이 잠재하고 있지 않은지, 돌연한 홍소가 기다리지 않는지 세밀하게 굴곡화하면서 연속하는 입면은 건물이 세워지는 장소를 모르는데도 콘테스트의 의의가 깊다는 것을 가리켜 준다. 어디서인지 다품에서 잠적한 정숙을 모두 흡수한 것과 비슷한 애매함과 섬세도가 소프트 포카스의 초점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실물에의 거리에 잔재주가 많은 수다나 정서과다한 생각은 착실하지 못할 것이다. 시자의 여행스케지를 보면 유럽으로부터 남미로, 남미로부터 아시아로, 행선지의 풍경이나 도시 그리고 거리, 여지것의 사람들의 생활단편이 때로 정확하게 때로는 손쉽게 그려지고 있다. 이들을 결합시키면 시자의 건물이미지가 이중노출한 것처럼 떠올라 있을 것같다. 생의 즐거움, 생의 애앙, 생의 괴로움, 생의 가여움, 이런한 생의 현실이야말로 시자의 건축 그것이며, 그 반영이 그의 건축을 때로 확실한 것으로 한 것으로 하든지, 때로는 불확실한 것이 되지 않는지, 그리고, 여기가 그의 건축을 이 밖의 경우에는 볼 수 없는 것으로 할 것이다.

대표작인 듀라트 주택에 나타난 형태요소
1. 팔라디오풍
시자는 ABABA의 고전적인 팔라디오 풍 리듬을 채용했지만, 마지막 A정간(bay)을 빼고 인접한 B정간을 단일층에 적용시켰다. 결국, B가 주출입구가 되는 ABA형상을 갖게 된 것이다.
2. 실내 계획
시자는 실내 계획을 위해서 아돌프 루스를 참조했는데, 대리석으로된 테라스식 계단이 솟아오르는 형태를 보여주는 듀라트 주택의 출입구 홀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3. 꼴라쥬
계단과 대리석 주택이 서로 일치하도록 배치한 것과 자유롭게 서 있는 기둥과 주 거실의 화덕 주변을 특히 강조하는 방법을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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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 (이문열)
사람의 아들 (이문열)

이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생때였던 것 같네요.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너무 어려웠죠.
게다가 어떤 종교에든 믿음이 그리 크지 못한 저로서는 낯설은 얘기들이 너무나 많았죠.
하지만 종교적인것을 떠나,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근본과 초월에 관한 것입니다.
아직 안 읽어 보셨다면 추천해 드리고 싶군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을꺼예요.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었죠.
이문열씨는 정말 현대 최고의 우리나라 작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행보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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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고등학생때 장 자크 아노가 만든 영화를 먼저 보았었죠.
그 후 대학생때 소설을 접하게 되었죠.
이 소설은 위트있고, 유머스러우며, 진지하고, 복잡합니다.
중세시대에 대한 내용이라 내용이 좀 어렵고 생소한 단어들도 많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퍼즐게임을 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실꺼예요.
전 이 소설을 읽고 움베르토 에코의 팬이 되어 그 후에 우리나라에 출판되었던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을 모두 읽었죠.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정말 그 많은 자료를 어떻게 모았을까 하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의 번역서를 얘기할 때 꼭 거론되는 번역가 이윤기씨도 언급하고 싶군요.
그는 보다 정확한 번역을 위해서 몇 번을 다시 번역해서 책을 내는 열성을 보여주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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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베르나르 베르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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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 말년에 읽었던 많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개미'입니다.
혹자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좋은 이야기꾼은 못된다고들 하더군요.
저도 어느 정도 그 말에 동의는 합니다.
특히 '개미'의 마지막 마무리에서는 확실하게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죠.
하지만 그의 상상력과 열정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관찰 온 개미에 대한 그의 묘사는 사실적일 수 밖에 없죠.
재미도 있구요.
그의 소설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지식을 추구하고 모든 것들에 대한 이해와 화합을 생각하는 그의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타나토노트'와 '개미혁명'에서도 잘 나타나 있죠.
'개미'는 저의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저에게 중요한 소설입니다.
최근에는 '아버지들의 아버지'라는 소설을 발표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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