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하면 뭐가 생각 나시나요? 비빔밥? 대사습놀이?
영화를 좋아하시는 여러분들은 앞으로 국제 영화제를 기억하셔야 할 것 같군요.

꼬리동은 전주 방문이 처음입니다.
영화제 개막식은 7시였지만 전주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영화제 본부로 가서 ID카드 문제를 해결하고 숙소를 잡고 일단 영화가 상영될 극장들이 모여있는 교사동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교사동은 전주내의 거의 모든 영화관들이 총집합되어있는 것 같더군요.
영화제 상영작들을 상영하는 5개 영화관 외에도 서너곳의 영화관이 더 눈에 띄었습니다.
개막식 전날이었던 27일날 저녁에는 교사동 영화의 거리에서 전야제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차량도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그리 활기차 보이지는 않더군요.
아직 공식적인 영화 상영이 시작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지만요.
게다가 어떤 영화관은 아직까지도 내부 수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교사동을 둘러본 뒤 개막식이 열리는 전북대 문화관으로 돌아왔습니다.
개막식 30분 정도를 남겨둔 입구 앞은 사람들로 붐비더군요.
기자, 스탭, 관람객 등 모두 어느정도 가슴 설레이는 마음으로 개막식을 기다리는 듯 했습니다.
개막식 시간이 다가오면서 영화제에 참관하는 유명인사들이 속속히 등장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장미희, 임권택 감독, 신상옥 최은희 부부, 강수연, 그리고 가장 높은 인기를 모여준 영화제 홍보 사절이기도 한 이정현 등등...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외국 영화제처럼 붉은 융단은 깔지는 못할 망정 그래도 식장 입구는 좀 번듯한 느낌이 들었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장식 없이 사람들의 인파에 시달리며 들어오는 배우들이나 감독들을 보니 좀 안타깝더군요.

7시로 예정되었던 개막식은 조금 늦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식전 공연으로 대금연주, 피아노 아쟁합주, 사물놀이, 레이저 쇼가 진행되었고 안성기, 김민의 사회로 개막식이 치루어졌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의 축하 메세지도 스크린에 보여지더군요.
초청된 여러 감독과 배우, 기타 영화 관련 인사들이 무대 위에 모두 올라가 인사를 하며 개막식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시간은 8시 30분.
원래 개막작품 상영시간인 8시를 훨씬 넘긴 시간이었죠.
그래서 개막작인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은 8시 40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습니다.

영화제의 진행에 대해서 몇가지 얘기를 하자면 우선 처음이어서인지 진행상의 어수선함이 좀 보이더군요.
개막식 준비나 식장 시설, 관객들에 대한 배려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전북대생이 위주가 된 듯한 자원봉사자들은 친절하긴 했지만 영화제 전반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듯 하더군요.
아마도 회를 거듭하게 되면 이런 점들은 차차 나아지겠죠.

개막작으로 선정된 '오! 수정'은 홍상수 감독의 3번째 영화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흥행에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었죠.
하지만 작품성만은 인정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 홍상수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작가주의 감독의 선두주자로 불리우고 있죠.
'오! 수정'은 '강원도의 힘'에 이어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크게 5가지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구성작가인 수정, 프로듀서인 영수, 화랑을 경영하는 재훈.
이 3명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죠.
흑백으로 찍은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무료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무엇 하나 뚜렷하게 보여주지 않고 있죠.
영수의 소개로 재훈을 알게 된 수정, 수정과의 섹스를 시도하는 재훈, 경험이 없다며 재훈과의 섹스를 거부하는 수정.
큰 줄거리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지만 1부와 3부, 2부와 4부는 같은 이야기를 다른 관점으로 진행해 나가는 독특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5부에서 재훈과 수정은 섹스를 나누고 행복한 앞날을 기약하지만 그들의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겠죠.

그런데 2부와 4부의 내용 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아니 어쩌면 어느것이 진실이든 그렇지 않든 그건 상관이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니까요.

'오! 수정'은 홍상수 감독의 예전 두영화처럼 무료하고 불투명하며 부조리하며 운명론적인 현대인들의 일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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