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동의 영화관람 캠페인

요즘 바쁘시죠? 학교, 직장, 또는 가정에서 왜 이리 할 것은 많은지..
게다가 날 찾는 사람들은 또 왜 이리 많은 것인지...(사실 꼬리동을 찾는 사람들은 몇 없슴다 -.-)
하지만 일단 좋은 영화 판편을 보기로 하셨으면 조금은 시간적인 여유를 가져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상영시간 10분에서 20분 정도는 일찍 영화관에 도착해서 좌석을 확인하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같이 온 친구나 애인과 같이 먹을 팝콘도 준비하구요.
그리고 영화관이 어두워지기 전에 편히 자리에 않아서 스크린이 밝아지기를 기다려 보세요.
참, 그냥 무작정 기다리지 마시구요 일단 휴대폰을 확인해 봅시다.
켜 있다구요?
음...
그럼 잠시 꺼두시는 것은 어떨까요?
아니면 음성사서함으로 자동으로 넘어가게 해 두시거나요.
스크린에서는 한참 심각한 장면이 나오는데 띠리리리~~~ 전화벨이 울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잖아요.
'그래도 난 전화 받아야 돼!' 하구 고집을 부리실 분은 진동으로 선택하시고 전화가 오면 조용히 밖으로 나가셔서 통화하세요.

자 준비가 다 되었으면 영화를 보자구요.
어라, 근데 화면이 반밖에 안 보이네요.
앞에 커다란 언덕이 하나 있군요.
흐흐흐...
앞에 앉아계신 분은 면접 받으러 영화관에 오셨나?
왜 이리 어깨에 힘을 주고 앉아 계실까?
옆에 계신 여자분에게 멋지게 보이려고 그러시나?
그러지 마시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영화를 봐 주세요.
그래야 뒤에 앉은 분도 즐겁게 영화를 보실 수 있답니다.
2시간을 그렇게 힘주고 앉아 계시면 몸에 쥐 안나나요?

오늘 꼬리동이 영화제 얘기는 안 하구 횡설수설하고 있죠?
아직 잠이 덜 깬듯...
하지만 꼭 하고 싶은 얘기였습니다.
영화관에서 그런 분들이 꼭 있죠.
영화 시작이 30분이 지났는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한 열의 거의 모든 사람들을 지나 자리를 잡으시는 분, '날 좀 보소'의 흥겨운 멜로디를 주변 분들에게 널리 들려주시는 멋진 분, 또 지금 영화 보고 있다고 전화로 친구들에게 크게 광고하는 분, 앉은 키 누가 크나 내기하시는 분...

이번 영화제 기간에서도 이런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국제 영화제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관람 예절은 실망스럽더군요.
물론 지난번에 썼던 것 처럼 영화제 진행도 미숙한 점이 많이 보였죠.
이런 것들은 소수의 사람들의 모습이지만 우리들 모두 조금씩만 더 여유를 갖고 한발 뒤로 물러서서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구 옆에 있는 사람이 그런 몰지각한 행동을 하면 주변 사람들 모두 눈총을 팍팍 주자구요.
^.^

자 그럼 이제 영화얘기를 해 볼까요?
어제 심야영화까지 쉬지 않고 본 꼬리동은 오늘은 주금이었습니다.
아침 9시에 잠자리에 들어서 잠깐 잔 듯 했는데 일어나보니 오후 3시더군요.
배불리 늦은 점심을 먹고 고사동 영화의 거리로 향했습니다.
일요일날의 거리와는 느낌이 좀 다르더군요.
평일이라 그런지 좀 한산한 느낌이었고, 매표소의 줄도 많이 줄어 있었습니다.

꼬리동의 오늘 처음 선택한 영화는 필립 그랑드리외 감독의 '음지'입니다.
인형극을 하는 폴은 이곳 저곳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여자들을 차례차례 살해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클레어를 만나게 되고 그녀만은 죽이지 못하죠.
왜일까요?

폴이 여자를 죽이는 이유는 명확히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꼬리동 생각은 사랑에 대한 미숙함,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기 못하는 성격적 결함, 성적으로 타락한 여자들에 대한 분노,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뭐 이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폴이 조금씩 정을 느끼는 클레어라는 여자도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외로운 인물로 보여지고, 극중 동생의 말에 의하면 숫처녀이죠.
그래서 어쩌면 폴과 클레어는 막연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서로를 원하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폴은 끝내 그런 감정을 거부하고 클레어를 떠나보내죠.
폴이 지나가던 차를 세우고 클레어를 태워 보내는 장면에서 꼬리동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어쩌면 폴과 클레어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독하고 부적응적이며 때로는 폭력적인 어두운 면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꼬리동은 오늘도 애니메이션을 보았습니다.
체코 출신 이지 바르타 감독의 '하메룬의 계약'과 '버림받은 자들의 밀실'이었죠.
한 마을에 쥐떼들이 나타나고, 한 사나이가 나타나 댓가를 약속받고 피리를 불어서 쥐들을 모두 없앤 후 약속했던 댓가를 요구하지만 거부당하죠.
그래서 그 사나이는 복수를 합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신 이야기죠.
바로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서양 전설 이야기입니다.
송창식 아저씨의 노래가 아니구요. -.-

'하메룬의 계약'은 이 전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조금은 희망적인 결말을 만들어내고 있죠.
여기서 보여지는 마을사람들의 단조롭고 반복적인 생활은 현대인들의 일상과 대비되고 가진자들의 탐욕과 착취도 현실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듯 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대부분의 소재를 나무를 사용한 것 같더군요.
마을과 인물들의 각이 지고 그로테스크한 모습들은 중세시대의 도시 하메룬을 표현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버림받은 자들의 밀실'의 주인공은 마네킹들입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마네킹들을 모아 놓은 창고.
그 곳에서 마네킹들은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동안 한가족처럼 그들의 일상을 영위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펑크족 마네킹들이 운반되어 오고 기존세력과 신세력간의 한판의 싸움이 시작되죠.
마치 영화 '마네킹'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은 이 애니메이션은 실제 마네킹을 써서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에로틱하고 때로는 기괴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죠.
정말 애니메이션의 상상력과 표현력은 무궁무진한 듯 합니다.

어제 무리한 꼬리동은 오늘 많이 피곤하네요.
내일의 영화관람을 위해서 오늘은 빨리 자렵니다.
여러분도 좋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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