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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공격대 (Attack Of The Killer Tomatoes!, 1980)
제목 : 토마토 공격대 (Attack Of The Killer Tomatoes!)
감독 : 존 드 벨로 (John De Bello)
주연 : 폴 애봇, 제리 앤더슨 니겔 바버
제작연도 : 1980 년
상영시간 : 87 분
줄거리 : 어느날 갑자기 토마토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는데...
이 글을 쓰면서도 과연 이 영화를 공포영화로 분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의문입니다. 정말 황당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영화. 도대체 이렇게 엉망으로 만든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배우들의 어색하고 엉성한 연기와 비슷한 시기의 '스타워즈'와 비교한다면 얘들 장난같은 특수효과, 게다가 토마토가 사람을 죽인다는 말도 안되는 설정. 아마도 역대 최악의 영화를 뽑는다면 당당하게 높은 순위에 진입할 수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B급 영화의 여러 요소를 볼 수 있고 상당히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영화죠.

'에어프레인'과 '총알탄 사나이'시리즈로 유명한 ZAZ사단의 패러디 영화보다도 이 영화는 훨씬 더 유쾌하고 심술맞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여러 SF영화를 패러디하고 있죠. '스타워즈', '죠스', '007', 심지어는 '새'까지... 또한 패러디와 항상 같이 하는 사회 풍자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시 미국내의 한심한 정치상황과 사회분위기를 코믹한 분위기로 마음껏 조롱하고 있는 것이죠.

기존의 고정관념을 송두리채 깨어 버리고 자유로운 상상력과 표현으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황께 하고 심지어는 짜증나게도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한번 보아둘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잡담 : 몇 년전 감독판 제작의 붐을 타고 이 영화의 감독판도 공개되었죠. 본 사람들의 소감은 정말 다시 한번 황당(?)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던데... 그리고 1988년에 공개된 '토마토 공격대'의 속편에는 현재 최고의 섹시가이로 인기를 얻고 있는 '조지 클루니'가 나온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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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오 (Re-Animator, 1985)
제목 : 좀비오 (Re-Animator)
감독 : 스튜어트 고든 (Stuart Gordon)
주연 : 제프리 콤스, 부르스 애봇
제작연도 : 1985 년
상영시간 : 95 분
줄거리 : 허버트는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려는 연구를 계속 해 오는데...
사실 이 영화를 말할 때 감독인 스튜어트 고든보다는 제작자였던 브라이언 유즈나가 더욱더 입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제작하고 이후에는 직접 메가폰을 잡고 '소사이어티', '리빙 데드 3' 등의 공포영화를 꾸준히 만들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스튜어트 고든은 '좀비오'와 '지옥인간(From Beyond)'외에는 그다지 공포스러운 영화를 만들지는 않고 있죠. 게다가 1993년에 만든 '포트리스'는 그의 마음이 공상과학물로 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이면서도 코믹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죠. 특히 짤려진 자기의 목을 들고 소동을 벌이는 장면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주연을 맞고 있는 제프리 콤스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배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는 꾸준히 공포영화에 출연하고 있죠. 최근에는 '나는 아직도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에 나오는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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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 에드 (Evil Ed, 1996)
제목 : 이블 에드 (Evil Ed)
감독 : 앤더슨 자콥슨
주연 : 제레미 플레어 길크리스트, 짐 프리드만
제작연도 : 1996 년
상영시간 : 93 분
줄거리 : 공포영화를 편집하던 기사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자살을 하게 되어 에디는 그 대신 일을 맞아서 하게 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꼬리동은 '데드 얼라이브'가 많이 생각이 나더군요. 비슷한 점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제목만 보면 혹시 '이블 데드'의 아류작 아니야 하고 생각할 수도 있고 비슷한 점이 없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이 영화만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스플래터 호러 영화입니다. 단순한 공포영화를 넘어서 이 영화는 공포영화 자체에 대한 고찰과 검열에 대한 은근한 냉소가 흐르고 있죠. 살인마로 돌변하는 인물은 공포영화를 검열하고 편집하는 인물인데 반해서 그를 마지막에 무찌르는(?) 인물은 공포영화를 재미로 즐기는 인물입니다. 참 재미있는 설정이죠? 어떻게 보면 웨스 크레이븐의 '스크림'의 카피 문구였던 '넌 공포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는 이 영화에 딱 어울리는 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포스터에서도 보실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데드 얼라이브' 못지 않은 살인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비디오 실정 상 모든 것을 다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속의 영화인 '절단된 사지'시리즈도 이 영화를 보는 재미를 한 몫 더 해 주고 있죠.

스웨덴 출신인 앤더슨 자콥슨 감독은 이 단 한편의 영화를 찍고는 연출활동을 안 하는 것 같더군요. 계속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은 영화들을 많이 선보엿을 것 같은데...아마도 개봉 당시 이 영화가 실패했었나 봅니다. 참 괜찮은 영화인 것 같은데... 그는 이 영화에서 운전사로 잠깐 등장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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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호라이즌 (Event Horizon, 1997)
제목 : 이벤트 호라이즌 (Event Horizon)
감독 : 폴 앤더슨
주연 : 샘 닐, 로렌스 휘시본
제작연도 : 1997 년
상영시간 : 95 분
줄거리 : 루이스 앤 클락호는 7년전 실종된 이벤트 호라이즌호를 찾기 위해 해왕성으로 가는데...
우리나라에서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대한극장에서 개봉했다가 재난(?)을 맞고 조용히 내렸던 영화입니다. 하지만 정말 괜찮은 영화죠. 특히 SF와 호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무의식속에 존재하는 심리적인 공포를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만든 폴 앤더슨은 예전에 '모탈 컴뱃'이라는 수준 이하의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의외의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죠. 이 영화에는 예전의 여러 공포영화들의 요소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에어리언', '샤이닝', 토비 후퍼의 'Lifeforce'(국내에서는 '뱀파이어'로 출시), 심지어는 일본 애니메이션인 '메모리즈'의 제 1화인 '그녀의 추억'까지도 연상이 되죠. 얼마전에 개봉한 배리 레빈슨의 '스피어'도 비슷한 부분이 많은 영화입니다.

각본, 촬영, 편집, 연출, 연기 모든 면에서 뛰어난 면을 볼 수 있죠. 이벤트 호라이즌 호의 비주얼도 좋았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공포의 장면들의 편집은 예술이죠. 하지만 결말은 좀 평이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정말 평가절하되었던 영화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잡담 :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벤트 호라이즌 호는 파리의 노틀담 성당을 모델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어리언'에서 촬영을 맡았던 애드리안 비들은 촬영감독으로 이 영화에 참가하고 있죠. 폴 앤더슨 감독은 얼마전에 커트 러셀 주연의 '솔져'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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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페리아 (Suspiria, 1977)
제목 : 서스페리아 (Suspiria)
감독 : 다리오 아젠토 (Dario Argento)
주연 : 제시카 하퍼, 스테파니아 카시니, 프라비오 부치
제작연도 : 1977 년
상영시간 : 97 분
줄거리 : 여대생기숙사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공포영화속에서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여자들인 경우가 많죠. 게다가 이 영화는 여대생 기숙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사실 영화의 스토리는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죠. 하지만 다리오 아젠토의 연출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감의 극치를 느끼게 해 줍니다. 피해자의 대부분들은 매우 잔인하게 살해되죠. 음악도 음산한 분위기를 더해 줍니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나라에 출시된 비디오를 통해서는 그 공포감이 많이 상쇄된 느낌입니다. 화질도 상당히 안좋고 많이 짤려나갔거든요. 아무튼 이 영화는 이태리 출신인 다리오 아젠토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며 유럽의 바로크적인 분위기와 미국의 B급 영화의 느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다리오 아젠토의 다른 영화로는 '페노미나'라는 영화가 있고 몇 년전에는 '스탕달 신드롬'이란 영화가 개봉을 하기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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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자식들 (It Lives Again, 1978)
제목 : 악마의 자식들 (It Lives Again)
감독 : 래리 코헨 (Larry Cohen)
주연 : 프레드릭 포레스트, 캐스린 로이드, 존 P. 라이언, 존 말리
제작연도 : 1978 년
상영시간 : 92 분
줄거리 : 비정상적으로 태어난 괴물 아이들을 가두어두던 철창이 열리고...
래리 코헨의 'It's Alive'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인 '악마의 자식들'은 B급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마음에 들 만한 영화입니다. 존 카펜터, 웨스 크레이븐처럼 그도 꾸준히 공포영화를 만들었었죠. 우리나라에도 비디오로 그의 작품을 몇편 볼 수 있습니다. 그중 가장 볼 만한 것이 이 작품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사실 이 영화는 영화로서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연출력도 좀 떨어지고 캐릭터 설정도 좀 애매모호한 느낌도 있죠. 하지만 인상적인 점은 관객들이 괴물아이들에게서 공포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정심도 느끼게 하고 있다는 것이죠.

래리 코헨의 영화속에 등장하는 괴물은 자본주의에서 파생되는 필연적인 산물을 의미하죠. 그리고 핵가족속에서의 위기와 파멸감을 은유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물음을 던지지요. 보이는 추함과 보이지 않는 추함 중에서 어느것이 더 추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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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난 시체들의 (Night Of The Living Dead, 1968)
제목 : 살아난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ad)
감독 : 조지 C. 로메로 (George C. Romero)
주연 : 듀안 존스, 주디스 오디어, 칼 하드먼
제작연도 : 1968 년
상영시간 : 96 분
줄거리 : 바바라와 그녀의 남동생인 조니는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묘지를 찾는다. 그런데 갑자기 좀비가 나타나 조니를 죽이고 바바라는 간신히 근처의 한 농가로 도망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좀비영화는 거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인기있었던 홍콩의 강시영화들도 넓게 본다면 좀비영화로 볼 수 있겠지만요. 그 외의 정통(?)좀비영화들은 극장에 개봉한 적도 거의 없죠. 단지 비디오는 꽤 나와있는 편입니다. 그 중에서 놓치면 절대 안될 영화가 바로 이 영화죠. 엄청난 아류작들을 만들기도 한 이 영화는 개봉한지 30년만에 우리나라에 출시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좀비영화의 고전입니다. 1998년 미국에서는 이 영화의 30주년 기념판이 출시되기도 했던 작품이죠. 흑백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라 여러곳에서 정치와 문명, 인간관계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족관계의 파괴에 대해서 까지도... 특히 마지막에 벤이 경비대의 총에 맞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죠. 과연 인종간의 갈등은 언제나 해결될 수 있을 것인지...

잡담 : 조지 C. 로메로 감독의 좀비 시리즈 중 1편인 이 영화는 '시체들의 새벽', '시체들의 날'(우리나라에는 '죽음의 날'로 출시) 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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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버스 (The Believers, 1987)
제목 : 빌리버스 (The Believers)
감독 : 존 슐레진저 (John Schlesinger)
주연 : 마틴 쉰, 헬렌 쉐이버, 로버트 로지아
제작연도 : 1987 년
상영시간 : 114 분
줄거리 : 상처한 칼 박사는 새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 뉴욕으로 이사오는데...
'미드나잇 카우보이'와 '마라톤 맨'이라는 영화로 널리 알려진 존 슐레진저의 공포, 스릴러 영화인 '빌리버스'를 처음 보았던 것은 AFKN을 통해서였습니다. 고등학생때였던 것으로 기억되네요. 어두운 밤 혼자 보는데 내용은 잘 파악이 안되었었지만 조금은 무섭기도 하고 또 재미있기도 했었죠. 마틴 쉰을 좋아하기도 했었구요. 전 사실 이 영화가 비디오로 출시가 되었던 것도 몰랐었습니다. 대여점에서 거의 본 적이 없었거든요. 못보았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러던 중 우연히 청계천의 노점상에서 이 비디오테입을 발견했었죠. 정말 의외였어요. 이런 영화도 비디오 출시가 되었구나 하구요.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사이비 주술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공포영화라기 보다는 스릴러영화라는 것이 더 맞는 표현같네요. 분위기는 마치 '오멘'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마지막에는 여지없이 아직 끝나지 않고 무언가 다시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남기며 끝을 내죠.

이 영화에서는 마틴 쉰을 비롯한 매우들의 열연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볼 만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감독은 존 슐레진저는 1990년 '퍼시픽 하이츠'이후로는 이렇다할 영화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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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드롬 (Videodrome, 1983)
제목 : 비디오드롬 (Videodrome)
감독 : 데이빗 크로넨버그 (David Cronenberg)
주연 : 제임스 우즈, 데비 해리
제작연도 : 1983 년
상영시간 : 88 분
케이블 TV의 사장인 맥스는 점점 더 자극적인 장면들을 보길 원하게 되는데...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거의 모든 영화속에서는 인간의 신체 기관이 크나큰 소재로 사용이 됩니다. 특히 '플라이','데드 링거' 등의 영화를 보면 확실하게 느낄 수 있죠. 그러면서도 그의 영화들은 거의 다 공포영화의 많은 요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공포영화로서 표면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인간사회의 여러 부조리를 냉철하게 꼬집고 있는 작품들이 많죠. '비디오드롬'도 그런 그의 작품 중의 한편입니다.

이 영화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던 시기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1983년. 다른 것은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음악쪽에서만 생각해 본다면 예전에 듣기만 하던 음악에서 뮤직 비디오가 붐을 타기 시작하면서 하루종일 뮤직비디오만 틀어주는 전문 채널(MTV)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The Buggles는 'Video Kill The Radio Star' 라는 노래를 불러 영상의 혁명을 예견하기도 했죠. 이런 시점에서 인간에게 가장 밀접한 생활 요소가 되어 버린 매스미디어에 대한 고찰이 없었을 리가 없습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그런 소재를 기이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성인방송, 변태적인 내용을 방영하는 사설방송...

사회가 발달하면서 매스미디어의 중요성은 더욱더 얘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그 매스미디어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고 이 영화는 말하고 있죠. 인간과 매스미디어가 일체화되어 또 다른 현대의 변종이 탄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청난 매스미디어의 물결속에서 자아를 잃어가는 우리 현대인들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 주는 작품입니다.

잡담 : 이 영화에 등장하고 있는 데비 해리는 원래 '어메리칸 지골로'의 주제곡 'Call Me' 로 유명한 그룹 'The Blondie'의 리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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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Lifeforce, 1985)

제목 : 뱀파이어 (Lifeforce)
감독 : 토비 후퍼 (Tobe Hooper)
주연 : 스티브 레일스백, 피터 퍼스, 마틸다 메이
제작연도 : 1985 년
상영시간 : 105 분
줄거리 : 우주선이 지구로 떨어진 후 여러명의 남자들이 살해되기 시작하는데...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 단 한편으로 공포영화계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매우 큰 것입니다. 하지만 그 후 그의 작품들은 뭔가 잘못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죠. 특히 헐리우드의 자본으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프로듀서를 맞았던 '폴터가이스터'는 그의 재능을 별로 살리지 못한 작품입니다. '폴터가이스트'의 실패 후 3년의 공백기를 가지고 공개한 작품이 바로 '뱀파이어(Lifeforce)'입니다.

전 사실 이 영화를 영등포의 허름한 재개봉관에서 보았었죠. 예상 외로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외계에서 온 아리따운 뱀파이어로 출연했던 마틸다 메이의 매력이 돋보였었죠. 그 당시로서는 꽤 훌륭한 특수효과도 보여주었습니다.

잡담 : '뱀파이어'라는 우리나라 비디오출시명 때문에 그저 그런 영화려니 하고 넘어가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더욱이 비슷한 제목의 영화들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괜찮은 영화입니다. 그래도 빌리실때는 원제를 꼭 확인하시고 빌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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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의 목격자 (Mute Witness, 1994)
제목 : 무언의 목격자 (Mute Witness)
감독 : 안소니 월러 (Anthony Waller)
주연 : 마리나 주디나, 페이 리플리, 에반 리차드
제작연도 : 1994 년
상영시간 : 90 분
줄거리 : 말을 하지 못하는 빌리는 우연히 스튜디오에서 살인현장을 필름에 담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별로 기대하지 않고 보았지만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입니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서 저의 생각과 동의하는 분들이 많을겁니다.

스너프(실제 살인이나 강간장면을 촬영한 영화)라는 특이한 소재를 이용한 영화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얘기들이 얼키고 설켜져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배가시킵니다. 주연여배우인 마리나 주디나의 무언의 연기도 정말 훌륭했습니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연기가 재미를 주었던 작품입니다.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좀 더 자극적인 '떼시스'라는 영화가 있죠. '떼시스'의 감독인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요즘 '오픈 유어 아이스'라는 영화를 가지고 팬들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잡담 : 이 영화의 감독 안소니 월러는 얼마전 '영국의 늑대인간'의 후편격인 '파리의 늑대인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화면은 많이 세련되어진 느낌이지만 '무언의 목격자'처럼 참신한 느낌은 좀 떨어지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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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니스 (In The Mouth Of Madness, 1995)
제목 : 매드니스 (In The Mouth Of Madness)
감독 : 존 카펜터 (John Carpenter)
주연 : 샘 닐, 요르겐 프로크노, 줄리 카르멘, 찰턴 헤스턴
제작연도 : 1995 년
상영시간 : 110 분
줄거리 : 존은 공포소설가인 케인을 찾아달라는 제의를 받고 그를 찾아나서는데...
B급 공포영화를 얘기할 때 빼놓지 않아야 할 감독이 바로 존 카펜터입니다. 아마도 현재까지 꾸준히 공포영화를 만들고 있는 몇 안되는 작가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감독 중 한명이죠. 그의 최고작은 역시 '할로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영화가 있기에 '13일의 금요일'도 아류작이라는 오명을 못 벗을 것 같네요.

이 영화는 끈임없이 되풀이되는 현실과 초현실의 교차속에서 그 구분이 모호해지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구분은 확실해지지 않습니다. 연출력은 평범한 편이지만 현실과 소설속의 세계를 오가면서 느낄 수 있는 공포감은 아직도 그의 건재함을 보여 주었죠. 하지만 마지막에 괴물이 샘닐을 쫓아오는 장면은 실망감을 주었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하긴 우리나라에 출시된 비디오에는 그 장면이 완전히 짤려나가 버렸습니다. 왜일까...

잡담 : 존 카펜터 감독의 또 하나의 추천작 '코브라 22시'(원제 : Escape From New York). 1997년에 개봉되었던 'L.A.2013'(원제 : Escape From L.A.)가 이 영화의 속편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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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4 (A Nightmare on Elm Street 4 : The Dream Master, 1988)
제목 : 나이트메어 4 (A Nightmare on Elm Street 4 : The Dream Master)
감독 : 레니 할린 (Renny Harlin)
주연 : 크리스틴 크레이톤, 튜스데이 나이트, 켄 사고에스, 로버트 잉글런드
제작연도 : 1988 년
상영시간 : 89 분
줄거리 : 틴에이져들이 하나 둘씩 꿈속에서 살해되는데...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호러 캐릭터중 하나가 바로 '나이트메어'의 프레디죠.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의 '나이트메어'시리즈는 나올 것 같지는 않네요. 웨스 크레이븐이 '뉴 나이트메어'를 만들면서 거의 종지부를 찍었으니까요.

이 영화는 '클리프행어'와 '다이하드2'로 흥행감독으로 인정받았고 여배우 지나 데이비스의 남편이기도 한 레니 할린 감독이 미국에서 처음 찍었던 영화입니다. 핀란드 출신인 그의 유럽적인 경향과 미국의 B급 영화의 특성이 잘 조화된 작품이죠. 공포영화 시리즈물이 대부분 형편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도 이 영화는 그런 징크스를 깨는 몇 안되는 작품중에 하나입니다.

'컷스로트 아일랜드'와 '롱키스 굿나잇'의 예상밖의 부진을 보였던 레니 할린 감독이 지난 여름 '딥 블루 씨'라는 영화로 다시 찾아왔었죠. 한동안의 부진을 씻고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을 한 이 작품은 레니 할렌 식의 오락영화의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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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인간의 최후 (The Bad Taste, 1987)
제목 : 고무인간의 최후 (The Bad Taste)
감독 : 피터 잭슨 (Peter Jackson)
주연 : 테리 포터, 크레이그 스미스, 마이크 미네트
제작연도 : 1987 년
상영시간 : 90 분
줄거리 : 한 시골도시에 침범한 외계인들을 하나 둘씩 처치해 나가는데...
아마도 공포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데드 얼라이브'라는 영화를 아실 것입니다. 얼마전 비디오 출시도 되었던 영화이기도 하죠. 그 영화의 감독 피터 잭슨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 바로 '고무인간의 최후' 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 출시명이 '고무인간의 최후'인 것은 이해가 잘 안가네요.

이 영화는 피터 잭슨이 거의 모든 분야를 혼자서 해 내었으며 배우들도 친구와 친척들을 모아서 촬영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자신도 출연했구요. 원래 TV촬영감독이었던 그는 중고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등의 열악한 환경에서 제작에 들어간지 5년만에 완성이 된 작품입니다.

'데드 얼라이브'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이 영화에서도 대담하고, 기발하며, 재치있고 또 유쾌함을 느낄 수 있죠. 저예산 영화의 단점들을 훌륭한 재치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단숨에 극복한 피터 잭슨은 이제 스플래터 호러 영화분야에서는 거의 컬트작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는 1997년 헐리우드에서 'The Flightner'를 만들어서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마이클 J 폭스를 재기시키기도 했었죠. 이 영화에서는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져서 인지는 몰라도 많이 점잖아지기는 했지만 그의 능력과 재치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잡담 : 이 영화는 1987년 제 17회 파리 환타지 SF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고, 영국의 BBC에서는 이 영화의 제작과정을 담은 'Good Taste'라는 다큐멘터리로 방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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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 연쇄 살인 사건 (303 Fear Faith Revenge, 1998)
제목 : 303 연쇄 살인 사건 (303 Fear Faith Revenge)
감독 : 소우칭 스리스팝
목소리 : 아르티드 류, 타야 로저스
제작연도 : 1998 년
상영시간 : 80 분
줄거리 :
우리는 가끔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을 보고 매우 흐뭇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죠. 태국영화라... 게다가 공포영화라구?

어쨌든 그럴듯한 겉표지를 보고 선택한 이 영화는 저에게 상당한 재미를 주었습니다. '스크림'이나 우리나라의 '여고괴담'처럼 젊은 세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죠. 아마도 어떻게 보면 '남고괴담'(?) 같은... 태국 영화라고 해서 좀 유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의외로 볼만합니다. 하기야 그리 많은 특수효과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단지 그들 특유의 억양때문에 좀 낯설기는 했죠.

이 영화는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여고괴담'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보여집니다. 소재도 비슷하고 주제도 비슷하고... 단지 배경만 좀 틀릴 뿐이죠. 근데 세상 어딜까나 집단 따돌림 같은 건 다 있나 봅니다. 그러니 태국에서두 이런 영화를 만들었겠죠?

암튼 이 영화는 헐리우드 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 볼만한 공포영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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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가우디 (Antonio Gaudi)
Antonio Gaudi (1852~1926)

1852년 카탈로니아의 레우스에서 출생.
1926년 바르셀로나에서 작고.
혹시 가우디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도 어느 광고에 나오는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가우디는 원래 스페인이 나은 유명한 건축가입니다. 그는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의 선두주자였죠. 그의 작품은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특색이 있습니다. 직선보다는 곡선을 주로 사용하여 자연과 건축물이 하나가 되게 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발전시켰습니다. 바르셀로나에 가 보면 그의 작품은 눈에 쉽게 띄고 그 주변에는 아직까지도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서고 있죠. 그의 설계 도면을 보면 보통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것과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의 미술 스케치같은 형태로 이루어져 있죠. 그런 도면을 기본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70년이 넘은 지금도 그의 작품이 건설되고 있습니다. 바로 바르셀로나에 위치하고 있는 '성 가족 성당'이죠. 짓기 시작한지 100년이 넘은 지금도 아직 완성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성당의 모습은 1994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TV를 통해서 보셨던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1995년 제가 바르셀로나를 방문했을 때 총 12개의 탑중에서 8개가 완성이 되어 있었죠. 과연 이 작품이 완성되는 것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정말 의문입니다. 그 외에도 구엘공원, 카사밀라 등 유명한 그의 작품들은 바르셀로나에 많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음의 사진들은 제가 바르셀로나에 여행했을때 찍었던 가우디의 작품들입니다.

구엘공원 (Park Guell, 1900 ~ 1914)

 

 

  
카사 배트로 (Casa Batllo, 1904 ~ 1906)

 
카사 밀라 (Casa Mila, 1905 ~ 1910)

 
성가족 성당 (Sagrada Familia, 1883 ~ )


 
구리 세공업을 가업으로 하는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7세때 바르셀로나에 있는 건축 연구소에서 수학하기 시작하여 1878년에 졸업했다. 학창시절의 그는 정규적인 교육 과정에 대해 거의 매력을 느끼기 못했으며 L.아리 바르바의 철학 강의와 P.빌라 아이 폰타날의 미학 강의를 열심히 듣는 학생이었다. 밀라 아이 폰타날은 낭만적 시기동안 로마에서 젊은 시적을 보냈으며, 유럽의 여느 곳처럼 카탈로니아 역시 일종의 낭만적 운동이 있었다. 이러한 운동은 카탈란이란 지방의 언어의 시는 물론 이 지역의 중세 역사와 건축에 관계된 것이었다. 19세기 말을 향해 나아가던 이 운동으로부터 발전된 스페인식 근대주의는 가우디의 상상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그로 하여금 수공예 기술에 대한 존경심과 중세 예술의 정직성을 깨우치게 해 주었고, 비올레 르 뒤크 중세 건축 개념으로부터 기계론적 논리를 얻게 해 주었고, 구조는 물론 세부 장식을 위한 영감의 한 근원으로서 자연을 생각하도록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러한 과정속에 수공예 운동에 관해 스스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구엘이란 직물 제조업자와 만나게 되어 그와 후원자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
 
1878년 졸업 직후 바르셀로나에 있는 카사 비센트를 디자인하였다. 이 작품은 계단 모양의 블럭과 돌, 벽돌의 변화를 이루는 건물이다. 이 건물의 건설이 복고주의가 만연할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진 어떠한 양식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실내의 중요 형상은 간접 조명의 조절을 통하여 건축의 각부분들을 마치 모자이크나 색채의 장식을 한 듯하게 만들었다.
 
가우디의 예술적 발전에 있어서의 정점은 바르셀로나의 구엘주택(1885~9)을 들 수 있다. 이 건물에서의 구조적 실험 - 특히, 포물선 아치를 사용했다는 점 - 은 그의 개인적인 양식을 낳게 한 계기가 되었고, 역사주의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얻게 해 준 결정적인 동인이 되었다.
 
1883년 그는 요청에 의해 바르셀로나에 있는 성가족 교회를 디자인하게 되었다. 거대한 규모의 이 건물은 모든 건설이 문제가 그에게 일임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있다. 빌라에 의해 디자인된 신고딕 양식이 이 건물에 이미 도입되었단 상태였다. 가우디는 이러한 양식을 거부하여 장식 솨시리나 세부 장식을 할 때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유추하기는 했지만, 그가 처음 만든 apse 부분의 선은 고딕적 향수를 많이 느끼게 해 준다. 이 건물의 동쪽 익부(trancept)에 있는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파사드를 만들때, 방형의 기초 위에 서로 물려 있는 4개의 탑들 사이를 3개의 개방문(open portal)으로 처리하고 전체 파사드는 비스듬하게 놓이게 하였다. 이 탑의 높이는 107m에 이르며, 그 정점은 얇고 곡선을 이루는 왕관같은 원형의 형태로 되어 있고, 모자이트로 닾여 있는 표층을 가로 지르는 일종의 유희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대부분을 가우디 혼자서 만든 복합적이고도 생동감 넘치는 이러한 세계는 무한히 다양한 식물과 동물, 군중들을 박공 아래에 있는 커다란 오목한 면을 통해 잘 함축되고 있다.
 
이 후, 바르셀로나의 파세오 드 그라시아에 있는 '카사 배트로(1905~7)'에서는 자연적 유기적 형태들이 단순히 건물 위에 입혀진 일종의 장식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뼈같은 형상의 기둥들처럼 근본적인 구조 요소로 구성되어간 것이다. 물결치는 파사드는 파도가 한번 치고 지나간 듯한 다색 모자이크로 덮여져 있고, 비늘같은 지붕은 일종의 아르마딜로(동물)의 등처럼 보인다. 이런한 효과의 형태는 가우디 자신의 초기 작품 성향인 조각적 조형성과 이후의 독자적인 구조적 형태 사이에서 일어난 편형물이다. 이런 구조적 조형성은 바르셀로나 근교의 산타 콜로마드 세르벨로에 있는 '콜로니아 구엘 교회(1898~1914)' 디자인 시스템 중 가장 주된 것이다. 건물의 구조적 리브를 재현하는 근을 모델로 하여 계획된 작품으로. 각 부재가 전달해야 할 하중에 비례하여 리브들이 매달려 있다. 이러한 리브들에 의해 나타나는 선들로부터 생긴 현수선은 건물의 기둥 형상이 반전되어 마치 메달린 것처럼 보인다. 모든 트러스트들이 적당히 기울어진 대각(pillar)과 결합되어 있게 때문에, 어떠한 방법은 후에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회중석을 디자인할 때 다시 이용되었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구엘공원(1900~14)'을 디자인할 때, 벽과 다리를 함께 지지할 수 있는 기울어진 형태의 지지물을 체계적으로 이용했다. 이 공원의 특이점은 추상적인 구성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 좋은 앙상블을 이루는 세라믹과 유리 모자이크를 풍부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카사 밀라(1905~10)'는 아마 그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작품일 것이다. 조형적으로 볼 때, 눈썹과 입술에 비교될 수 있는 물결치는 듯한 수평 외곽선의 리듬을 가진 유기적 형상으로, 하나의 커다란 돌 구조물처럼 구성되어있다. 그의 작품과 초현실주의와의 유사점은 바로 여기서 잘 나타나고 있다. 구조적인 면에서 그의 걸작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학교(1909)'이다. 이 건물은 피막형태의 얇은 벽돌 막으로 지붕과 벽체가 이루어져 있다.
 
후기에 접어들면서, 직선은 인간에게 귀속되는 선이며, 곡선은 신에 귀속되는 선이라고 단언하고 나섰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 비록 그의 디자인이 결코 순수한 기하학적 성격을 띄지는 않았지만 - 쌍곡선과 포물선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우주적인 뜻이 함축된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들 형태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익숙하게 대하는 생명력 있는 형상들이었다. 뼈, 근육, 날개, 꽃입 등은 물론, 심지어 동굴, 별, 구름 등의 형상들이었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점점 가속됨에 따라, 가우디의 건축은 교육 기관 등에서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20세기 초반의 근대주의에 밀착되어, 그 평가 역시 오랜동안 뒤로 미루어졌다. 가우디에 대한 재평가는 니콜라스 펩스너의 다음과 같은 두가지 비평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1949년의 글에서,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은 '영원한 남부 바로크 양식의 시대 착오적인 예로서 평가될 수 있다.' 1957년의 글에서 '그는 아르누보에 의해 탄생된 유일한 천재였다.' 라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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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꼬르뷰제 (Le Corbusier)
Le Corbusier (본명 : Charles Edouard Jeanneret, 1887~1965)


1887년 스위스 라쇼데퐁스에서 출생.
1965년 프랑스 로크브룬네에서 작고.
1920년대 국제주의 약식의 창시자 중에서 르 코르뷰제는 가장 상상력이 풍부하고 영향력을 많이 미친 건축가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컬리에 의하면 루이스 설리반의 노력을 뒤이어 진정한 인본주의적인 건축을 창조해낼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르 코르뷰제는 스위스의 프랑스어 사용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에서는 그림과 판각의 기예가 대대로 전승되어오고 있었다.
 
르 코르뷰제에는 처음에 시계를 판각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예술의 길에 들어섰다. 미스와 마찬가지로 그도 건축학교에서 정규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지만, 그의 천재성으로 말미암아 뛰어난 건축가가 되는데 필요한 것은 어디서든지 섭렵할 수 있었다.1909년부터 1910년 사이에 그는 파리에 와서 페레 밑에서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베를린의 페터 베린스로부터는 철골의 사용법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또 오토 바그너, 네덜란드의 베를라헤와도 접촉하게 되었다. 뒤이어 그는 연필과 스케치북을 손에 들고 아테네, 로마 등 지중해 연안의 건축을 탐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1917년에는 파리에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입체파와 접촉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10년경에 피카소와 브라크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적용하여 대상의 내외부를 동시에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르 코르뷰제는 이와 동일한 방식을 건축에 적용하여 내외부 공간의 상호관입을 위한 방법을 개발해 내었다.이 내외부 공간의 상호관입은 보로미니와 구조기술자의 건축에 의해 이미 예시된 바 있다. 그는 오장팡과 함께 1918년에 회화분야에서 순수파를 창립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매스와 윤곽을 서로에게로 흘러 들어가 상호관입하게 되는 부유하는 듯한 투명한 대상을 좋아하고 있음을 표방하였다.(순수파는 입체파와 네덜란드의 더 스타일 운동의 추상적 회화와 관련이 있다.) 1920~1925년 사이에 르 코르뷰제는 '새로운 정신'이라는 정기간행물을 간행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미학에 대한 원리를 발전시켜나가서 이를 1923년에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였다.

건축가로서의 르 코르뷰제의 경력은 1915년의 도면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도면을 보면 3개의 수평 슬라브들이 6개의 철근 콘크리트 기둥들에 의해서 지탱되어져 있으며, 이들은 계단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어져 있다. 이러한 구조는 구조 기술자들이 개발한 철근 콘크리트 골조를 건축적 표현수단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그러나 르 코르뷰제 활동의 핵심이 되는 것은 주택 문제이다. 종종 인용되는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이다'라는 그의 말은 상당히 오해를 받았다. 르 코르뷰제는 비행기가 날기 위해 설계되고, 배가 물을 건너 화물을 나르기 위해 설계되듯이, 주택도 특정한 목적에 기여하는 기계처럼 설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르 코르뷰제는 현대 건축을 위한 5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이러한 것들은 그가 지은 건물들의 여러가지 측면에 관련되어지고 있다.
1. 기둥 : 기둥은 주거의 개방공간을 통과하여 자유로이 세워져있어야 한다.이러한 기둥은 이미 존 내쉬와 앙리 라브르스트가 사용한 적이 있지만, 르 코르뷰제는 이 기둥을 모든 하중을 부담하는 골격으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벽체는 아무것도 지지하지 않은 상태로 남게 된다. 이것은 그의 두번째 원칙과 직접 연결된다.
2. 건물 골조는 벽체, 즉 외벽과 내부 칸막이벽 모두가 서로 기능적으로 독립되어야 한다. 윌리암 르 배런 제니, 빅토르 오르타, 오귀스트 페레 등은 이미 이 원칙에 맞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3. 개방된 평면 : 이것은 기능적 분리와 건축적 표현의 두가지를 동시에 수행하는 수단이 된다. 직선이나 곡선의 벽체들에 의해 내부공간이 형성되며, 이제까지와는 낯선 대담한 내외부 공간의 상호관입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건축공간의 처리는 개방 평면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개방평면을 유기적이고 신비로운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르 코르뷰제는 기술적이고 합리적으로 해석하였다.
4. 자유로운 외관 : 이것은 뼈대 구조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5. 옥상정원 : 라이트가 설계한 주택의 구성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주위를 돌아다녀야 할 필요가 있다. 르 코르뷰제의 주택은 위아래의 여러 다양한 시점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입체파가 추구하였던 바이다. 평지붕은 기능적인 용도로 전환되었으며 조각적 건축적 표현의 기반이 되고 있다.

르 코르뷰제 작품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평생을 통해 끊임없이 노력을 하면서 인체의 형상을 건축의 형태로 실체화시키는 방법을 발견해냈으며, 이렇게함으로써 그는 진정으로 의미 깊고 표현력이 풍부한 인본적인 건축을 창조해 냈다는 점이다. 1920년대 르 코르뷰제의 건물은 극적으로 표현되어진 활동을 담기 위한 긴장에 찬 그릇이었다. 따라서 이때의 건물들은 독립적인 조각작품처럼 처리되어 있기는 하였지만 처음에는 조각작품이 지니는 동적인 힘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이는 인체로부터 유추되는 근육적인 특성도 지니지 못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인간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지도 못하였다.
르 코르뷰제 작품의 두번째 발전단계는 1930~32년 사이에 지은 스위스 학생 기숙사에서 보여진다. 여기에서 르 코르뷰제는 2개의 상반되는 요소를 결합시키고 있다. 이 건물의 필로티 중 일부는 조소적이고 근육적으로 되어 있지만, 그 위의 박스 형태의 방들은 마치 공간을 에워싸는 얇은 막처럼 표현되고 있다. 1931년의 소비에트 궁전을 위한 계획안에서는 내용물을 감싸고 있는 표피의 개념이 완전히 버려지고 있다. 르 코르뷰제는 이 건물을 머리, 어깨, 허리, 엉덩이 등을 갖는 인체로 형상화시킴으로써 전체의 매스를 통합시키고자 했다. 그 결과 이 건물은 아프리카의 조각작품처럼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이미지가 기이한 모습으로 떠오르고 있다. 1952년에 완성된 마르세이유 아파트에 이르르면 그가 동적인 기념물을 만들기 위해 추구했던 모든 독창적인 요소들이 최종적으로 서로 결합되어지게 된다.
언젠가 르 코르뷰제는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건축은 시대정신의 산물입니다... 건축은 공간이며, 폭이며, 깊이이며, 높이이며, 체적이며, 동선입니다. 건축은 인간의 착상입니다. 건축은 머리속에서 생각되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그 디자인을 그려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도면이란 단지 여러분의 생각을 건축주나 시공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건축의 모든 것은 평면과 단면에 있습니다. 평면과 단면을 통해서 살아 숨쉬는 실체가 얻어지면 입면은 자연히 따라나오게 되는 것이며, 여러분이 디자인 센스를 조금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 입면은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물론 주택의 본래 목적은 그 안에서 살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입면 역시 성공적으로 디자인 되어야만 훌륭한 건축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많은 상상력 역시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쉬울수록 상상력은 더욱 많이 필요하게 됩니다. 건축은 구성입니다. 여러분은 제도판 위에서만 작업을 하는 양식주의자가 아닌 구성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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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반 데어 로에 (Ludwig Mies Van Der Rohe)
Ludwig Mies Van Der Rohe (1886~1969)

1886년 아헨에서 출생.
1969년 시카고에서 작고.
그는 건축에 관련된 형태의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의 건축이 보여주는 고도의 훌륭한 장인 기질과 건축능력은 석공이자 돌 조각가인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아헨에서 치장벽토(stucco)장식 디자이너로서의 작법을 배웠다. 1905년 베를린으로 가서, 나무로 된 구조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건축가로 잠깐 활동했다. 목재에 대해 좀 더 배우고자, 당대의 지도자적 가구 디자이너인 B. 파울 밑에서 2년동안 도제 생활을 했다.
 
1908년 그 당시 독일 건축사들 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피터 베렌스와 합류했다. 베렌스와 함께 한 3년간은 그에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베렌스의 작품 경력은 곧 미스의 작품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예견하는 것이었다. AEG회사를 디자인한 베렌스는 독일 전기 합동 기업의 건물들뿐만 아니라 이밖에 수많은 건물을 선보였다. 그는 근대 산업사회에 적합한 디자이너로서의 건축가에 대한 생각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렌스의 공장 생산은 자신의 업적에 그칠 뿐이었다. 그 역시 K.F 싱켈의 신고전주의 자신의 건축에 적용시켰고, 특히 기념비적인 성행의 작업에는 더욱 심하였다. 베렌스의 몇 몇 공장들의 단순화된 박공부분과 대리석 각주에 싱켈적인 신고전주의가 나타나곤 했다. 신 고전적인 수단의 엄격성과 형태의 순수성, 비례의 완벽성, 세부 장신의 우아함, 표현의 장중함을 창조사는 것이 미스의 주된 목적이었다. 시작부터 그는 베렌스의 작품이 갖는 산업적 성행보다는 신 고전적 성향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 이유로 베렌스의 기념비적인 건물 중의 하나인 성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독일 대사관(1911~12)의 건설 감독관으로 미스가 함께 했던 일이 미스로 하여금 그러한 성향을 뛰게 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1911년 베렌스를 떠나 베렌스의 작품과 유사한 성향을 띄게 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1911년 베렌스를 떠나 베렌스의 작품과 유사한 신 싱켈적인 스타일의 주택들을 디자인했다. 이 당시 미스의 작품 중 주목할만한 것-그의 스승이 보여주었던 신고전주의를 능가하는-으로 H. 크뢸러를 위한 돌출 형태의 주택과 회랑(1912)을 들 수 있다. 미스는 크뢸러의 의뢰에 따라 네덜란드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베렌스에 버금가는 네덜란드 건축가인 베를라헤의 작품과 철학을 접하게 되었다. 베렌스가 형태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면, 베를라헤는 고전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고딕적인-재료와 구조에 관해- 정직한 표현에 가까운 19세기 윤리적 이론으로부터 자신의 건축철학을 유추해 낸 사람이었다. 달리 말하여 베렌스는 형태를 강조했고, 베를라헤는 구조와 재료를 강조한 것이다. 새로운 건축을 위한 이 두 성향의 통합이 미스의 건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미스의 낭만적인 신고전주의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근대 건축에서의 그의 경력은 1919년에서 1924년 사이에 발표된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과 독창성이 깃든 일련의 계획안들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계획안들은 전후 베를린의 자유적 분위기-독일의 표현주의와 네덜란드의 데 스틸, 러시아의 구성주의와 지상주의 등의 갑작스러운 분출에 따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혼란속에서 그는 디자이너이자 선전가로 활동했다. 또한 근대 미술에 이바지한 'G'(Gestaltung의 약자, 조형력)란 이름의 잡지 발기인 중 한 명이었다. 11월 그룹에도 합류하였다. 11월 그룹은 공화주의 혁명이 있었던 달(11월)을 기념하여 1918년에 결성된 조직으로서, 근대 운동을 널리 알린 그룹이다. 미스는 1921~25년까지 이 그룹의 건축분과를 맡아 운영했다. 그의 초기 근대적 계획안이 처음 발표된 곳은 11월 그룹의 연례, 전시회를 통해서였다. 삼각형 형태들(1910)과 자유로운 곡선 형태들(1920~21)로 된 두가지 마천루 계획안에서 그는 마면 형상의 유리가 갖는 반사적인 성질을 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후자의 마천루(자유로운 곡선 형태로 된)는 건물 위에 떨어지는 빛의 유희를 극대화 시키는 형상으로 결정되어졌다. 보강 콘크리트 사무소 빌딩 계획안(1922)이 이보다 더 예언자적인 작품이었다. 캔틸레버로 된 슬래브는 금속의 세로 창살들로 이루어진 줄무늬 형태의 창을 연속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난간에서 끝나고 있다. 나중에 가서야 그 가치를 인정받아 알려지기 시작한 계획안으로, 근대적 건축의 기본 모티브 중의 하나인 가늘고 긴 창문 형태를 처음으로 사용한 작품에 해당된다. 미스의 작품 경력에 있어서 이 단계의 완결작은 두개의 주택 계획안이다.
 
1923년에 디자인된 첫번째 계획안은 벽돌로 이루어진 시골 주택으로, 데 스틸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슬래브에 사용된 벽돌 패널은 T자형과 L자형 두가지인데, 이 패널은 연결되어 있으며, 공간상의 비대칭적 균형을 이루면서 배열되어 공간적 연속성을 조절하고 있다. 체계적인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데 스틸의 구성 원리를 적용한 첫 건축 작품으로 인정받는 순수한 형태로 표현되었다. 종래의 데 스틸적 요소와 입체파 요소의 혼합된 형태와는 다른 것이었다. 두번째 계획안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되어 있다. 다층의 테라스 형태로 되어 있는 대지 주변에 마치 바람개비 같은 구성을 한 확산형 구조물이다. 주택의 수평성과 더불어 주요 계획 요소들에 맞추어 만들어진 불규칙적인 매스의 결정은 당시의 국제주의 양식을 지배하던 공간을 각재로 밀집되게 둘러싸는 방법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1920년대 후반에 미스의 근대적 스타일을 보여주는 몇 작품이 선보였다.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은 베를린에 있는 칼 리브크네트 로사 룩셈부르크 기념물(1926, 후에 나치에 의해 파괴)이다. 수평으로 깎인 형태 구성과 상자같이 앞으로 나오고 들어가는 형태 요소들로 이루어진 벽돌벽이 특징적이고, 20세기에 세워진 몇 되지 않는 중요한 기념물 중 하나였다. 두개의 벽돌 주택-구벤에 있는 볼프 주택(1926)과 그레펠트에 있는 헤르망 랑게 주택(1928)-은 전후에 보여주었던 그의 신 싱켈주의적 경향에서 얼마나 멀어졌는가와, 초기에 그가 가졌던 신 고전주의적 성행이 어느 정도로 계속되어지는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국제주의 양식과는 부관한 고착성과 입체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볼프 주택은 벽돌벽들의 정밀한 확장이 주는 테라스식의 추상적인 벽돌 배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당시, 그의 작품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두 작품은 다음과 같다.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바이센 호프 주거 단지 전시회(1927)가 그 한 예이다. 여기에 유럽 건축계를 주도하던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모두 참여하여 각기 다양한 유형의 주거 단지를 대규모의 옥외 전시장에 출품하였다. 독일 공작 연맹이 후원자로 나섰고, 그 진행의 총 책임자는 미스가 맡았다. 이 옥외 전시회에는 당대의 다양한 구조물들과, 단일 세대빌라에서 미스의 뛰어난 아파트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구체화된 21개의 영구적인 건물들이 선보였다. 양적으로 많은 훌륭한 건물들 중에서, 특히 근대 건축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바르셀로나에 있었던 국제 전시회(1928~29)에 출품한 미스의 독일관을 들 수 있다. 1923년 발표한 시골 주택에서 볼 수 있었던 데 스틸적 실험이 여기서도 계속되었지만 요소들의 단순화와 초기 디자인의 복잡함을 전체적인 안목으로 다룬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바르셀로나관 이후, 유럽에서의 작품 활동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주책을 디자인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브루노에 있는 콘크리트 외장으로 된 투겐하트 주택(1930)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완만한 경사 위에 지어진 이 주택은 후면이 2층, 전면(도로에 인접된)이 1층으로 되어 있다. 크롬 도금된 기둥과 자유롭게 서 있는 패널(마카사산 흑단으로 칠해진 반원형의 패널)이 특징인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 위치하는 거실의 연속적 공간 처리는 바르셀로나관(독일관)을 연관시켜 준다. 여기에 미스가 디자인한 가구가 더해져 더욱 풍부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천장을 받치지 않는 벽으로된 통로의 모든 세부 장식은 평범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투겐하트 주택은 유럽에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1930년대 초 중반기의 계획안들 중 벽으로 둘러싸여진 안뜰을 가지고 있는 주택 계획안이 가장 의미 있는 것이었다. 비록 둘러싸여진 벽돌벽이 먼 속에서 볼 때 개방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이러한 주택들의 대부분은 단형 골격으로 전체적인 경계가 이루어져 있다. 한 예로, 다양한 크기의 테라스 주택들은 벽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전체 형태는 단일 직선 형태로 되어 있다. 내부의 경우, 미스식의 공간적 연속성-여기 저기에 패널이 설치되어 단일 공간에 변화를 주는 것-을 주로 하고 있다.
 
그로피우스의 권유에 따라, 1930년 바우하우스 교장이었던 H.마이어의 뒤를 계승했다. 그러나, 1932년 극우익파의 압력을 받아 학교를 데사우에서 베를린으로 옮겨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베를린으로 옮긴 후 짧은 기간동안 사설 학교로서 존립하다가 나치 정부에 의하여 1933년 문을 닫게 되었다. 호전적인 정치적 환경을 독일에서의 작품활동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였다. 그는 1937년 여름 미국으로 건너가 거주하였고,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38년 시카고에 있는 IIT공대(당시의 이름은 아르모르 대학)로부터 초청되어 학생을 지도했다. 그의 미국에서의 첫번째 작품은 IIT공대의 캠퍼스 계획과 건물들(1940년대부터 시작)이며, 이 작품은 미국에서의 작품 활동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IIT공대 캠퍼스 이후, 일리노이 주 폭스 리버에 있는 유리와 금속 재료로 된 파른스워드 주택(1946~50)을 발표했다. 지반위에 떠 있는 듯한 3개의 슬래브, 테라스 슬래브, 바닥 지붕 슬래브는 모두가 그 형의 보의 지지하에 설치되어 있다. 마치 자기력에 의해 뼈대가 서 있는 것 같은 슬래브 측면의 지지물이 확산되어 가는 슬래브들의 부유적인 성직을 더욱 고양시키고 있다. 상술한 3개의 슬래브처럼 테라스 사이와 단형 유리 박스같은 거실로 통하는 테라스와 현관 출입구 사이에 놓여 있는 슬래브들 역시 마찬가지 효과를 내고 있다. 독특하면서도 우아한 이러한 뼈대의 정교함은 표출된 비대칭성이 내재된 내칭성과 대립되는 구성방식으로 되어 있을 때 생겨나는 성교함에서처럼 때때로 간과되기 쉽다.
파른스워드 주책-일종의 개방된 파빌리온-의 기본 개념은 IIT공대에 있는 건축 및 디자인 학과를 위한 크라운 홀(1952~56)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떠있는 듯한 계단들이 테라스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파른스워드 주택의 경우처럼 바닥슬래브를 지면에서 몇 피트 정도 들어올린 것 같은 형태로 되어 있다. 하지만 외양에도 불구하고 크라운 홀의 바닥 슬래브 밑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면, 크라운 홀은 판유리로 끼워져 지하층과 연결되어 있는 형태이다. 이런 식의 공간의 개방성은 지지물 위에 매달려 있는 듯한(오히려 부착되어 있는 듯한)2개의 슬래브에 의해 더욱 고양되어 있다.
 
미국에 지어진 그의 모든 작품들의 공간을 볼 때, 바르셀로나관 이후 유럽의 작품에서 보여준 정교하게 모듈화된 공간에 미치게 못하고 있으며, 크라운 홀의 구심적인 박스형 공간에 머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953년 시카고에서 좀 더 규모가 커진 파빌리온인 컨벤션 홀 계획안을 내놓았다. 지붕 슬래브는 한 변이 9.1m인 입체 모듈 위에 엮어진 트러스들로 구성된 3차원 구조물로 의도되었다. 미스는 5만여명의 수용인원이 가능한 기둥없는 내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스팬이 219.5m에 이르는 슬래브-약 두개의 도시 블록에 해당하는 길이-를 만든 것이다. 3차원적인 천장 트러스의 외곽부분으로부터 확장되어진 대각선 버팀대는 외벽을 2차원적인 트러스로 만들어 버렸다. 이 버팀대는 하부의 보강 콘크리트 기둥(약 36.6m)위에 직접 맞닿을 정도로 건물의 전면을 가로지르고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파빌리온식 건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베를린에 있는 뉴 내셔널 화랑(1962~68)이다. 쿠바의 산티아고에 바카르디 상사 본관 건물을 디자인하였는데, 이 건물은 십자형 단부로 된 8개의 지지물 위에 井間형의 천장이 놓여져 있으며. 각 코너 부분의 지지물은 뒤로 후퇴되어 있는 형태이다. 깊숙이 뒤로 밀려난 유리벽은 몇개의 움직일 수 있는 무대용 벽들에 의해서만 분할되어지는 전시공간을 둘러싸고 있다. 서비스 전시공간은 기초층(pedestal storey)에 꾸며져 있고, 이 앞에는 일종의 조각 정원이 펼쳐져 있다.
기본적인 파빌리온이 일련의 건물들이 중첩 적용됨에 따라 마천루의 골격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뉴욕에 있는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1950~51)와 시그램 빌딩(1954~58, P.존슨과의 공동 작품)은 파에스퉁에 있는 그리스의 포세이돈 사원과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이 같은 건물이자 다른 건물인 것처럼, 같은 건물이면서도 각각 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는 작품에 해당한다. 포세이돈 사원같은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의 수수함이 파르테논같은 시그램 빌딩의 세련됨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의 경우, 수직적인 블록들은 협소한 공간 틈새를 서로 가로지르면서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복합 건물은 전면과 후면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한 블록의 좁은 면은 다른 블록의 넓은 면과 맞서고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서로의 위치가 뒤바뀌는 변화를 즉각 느낄 수 있다.
 
벽돌로부터 돌출된 I형보가 창문 위에서 끝나는 형상은 비스듬하게 기운 형태를 연출하며, 그렇지 못한 형사(창문가지 보가 나오지 않는 부분)은 제대로 놓여진 형태를 연출하고 있다. 이 두 부분의 형상이 서로 엇갈리면서 보이기 때문에 시각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다.한편, 시그램 빌딩은 직각적으로 불균형을 이루는 정적인 요소의 역설적 표현이 돋보이는 레이크 쇼어와 좋은 대로를 이룬다. 동으로 된 이 빌딩은 출입구 광장의 완전히 빈 공간을 전면에 둔 짙은 검은색의 벼랑같은 모습이다. 광장의 축은 엘리베이터 통로의 탑문(pylon)을 뒤로 하고 서 있는 2층 높이의 각재로 된 출입구의 형태적인 외관에서 절정을 이룬다.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의 격자형 창과는 달리, 수평적인 힘이 수직적인 힘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듯하며, 이러한 긴장감은 단정적으로 의도된 듯한 수직성의 강조와 상쇄되고 있다. 즉, 첫번째 요소(수평적인)의 지각적인 긴장감이 반대 요소에 의해 와해된 것이다. 미스가 '그 자체로서 최종적인 것'이라고 여긴 벽돌과 I형 보로부터의 건축을 유도해 낸 것처럼, 몇몇 다른 목적에 적합한 요소적인 건설 유형을 발전시켰다. 그의 연구 방법이 좁은 범위에 한정되어 있지만, 바로 이 점이 그가 추구한 예술의 순수화와 열정적인 통합화를 가능하게 한 것이었다. 그의 위대한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적을수록 더 낫다(Less id more)'라는 개념은 한 이념의 역설적 실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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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스털링 (James Stirling)
James Stirling (1926 ~ 1992)

1926년 4월 22일 영국 글라스고에서 출생.
1992년 6월 25일 런던에서 작고
그의 아버지는 선박 기술자였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꽉 짜여진 배 형상의 근대 디자인에 대한 그의 애착이 더 깊어진 것 같다. 그의 학구였던 C.로웨의 작품 성향 역시 그의 후기 작품에서 나타나는 고전적 인본주의적 성향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 1953년 런던을 중심으로 리용스와 이스라엘, 엘리스 등과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곳에서 J고완을 만나게 되었다. 1956년부터 당시에 지배적이던 국제주의 양식과는 전혀 무관하면서도 독특한 일련의 근대적인 건물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햄 코몬에 있는 주택들(1955~8), 케임브리지의 처칠 대학 공모전(1959), 라이체스터 대학 공학관(1959~63) 등이다. 이들 작품은 붉은 벽돌과 판유리로 된 온실이 서로 극적인 대조를 이루면서 형태적 정교함이 대담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작품들이었다.
 
1963년부터 1971년까지 그는 혼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 시기는 많은 독창적인 디자인들이 많이 나온 때였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 회관(1964~7), 성 앤트류 대학교의 학생들을 위한 주거단지 (1964~8), 미들레스브로에 있는 도르만 롱 본관 계획안(1965), 하슬레메레에 있는 올리베티 훈련학교(1969~72), 뮌헨에 있는 지멘스 AG계획한(1969), 데르비 시 중심가 계획안(1970) 등이 있다. 지멘스 AG 계획안과 시 중심가 계획안은 레온 크리어가 보조 건축가로 참여했고, 1968~70년 사이에 만들어진 드로잉들에서도 크리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1971년부터 그의 보조 건축가인 M 빌포드와 함께 파트너 관계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밀톤 케이네스 소재의 올리베티 본관 계획안(1971)과 성 앤드류 대학교 소재의 미술센터 계획안(1971), 뒤셀도르프 소재의 노르드라인 베스트팔렌 미술관 공모전과 퀼른 소재의 발라프 리하르트 박물관 공모전 출품작(1975), 슈투트가르트 주립 미술관 확장 계획안(1977,1984년 개장) 슈투트가르트 소재의 뷔르셈베르크 주립 극장 신축 건물 등을 들 수 있다.
 
1960년부터 예일 대학교 건축과 교환교수이자 비평가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1968년 로웨 맨하탄 공모전에 참가했다. 이 때부터 그의 이름이 미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의뢰작품들 중 대표작으로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있다. 휴스턴에 있는 리스 대학교 건축과 건물 확장공사(1979~81), 메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 포그 미술관의 날개 부분의 신축 건물(1979), 뉴욕의 콜림비아 대학교 화학관(1981) 등.
몇몇 비평가들은 1970년대 이후의 그의 작품이 형태주의적 성향으로 나간다고 평가했다. 슈투트가르트의 주립 미술관이나 테이트 화랑 확장 계획안같은 작품은 포스트 모던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그의 전 작품을 관찰해 보면 일관된 통합성을 느낄 수 있다. 작품에서의 변천과정이 중요한 의미를 띄고 진행된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는 르 코르뷰지에가 자신의 롱샹 교회를 통해 변이가 일어나듯 그의 초기 작품 역시 이와 비견되는 유사성을 가지며, 일종의 자유로운 행동이 표현적인 제스처로 표출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의식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절충주의적 참조물과 형태적 구조체들을 동등하게 사용하고자 했다. 모든 예술적 창조가 지니는 의도적인 성격을 받아들이면서 1945년 이후의 많은 건축물들을 병들게 했던 위선적인 결정주의로부터 그 자신 스스로 자유롭고자 했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역사성의 요소는 그의 초기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근대성의 요소 못지 않게 자의식적인 것이었다. 그의 작품이 갖는 중요성도 바로 이같은 정직성과 편견의 배제로부터 온 것이다. 여러 의뢰인들이 저마다 요구하는 것들에 부응한 그의 비 예언적인 성격은 그가 만드는 작품들을 젊은 세대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건축철학
건축에서의 단편화, 다극화, 다양화, 상대화, 꼴라주, 모자이크화 현상을 반영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다양한 건축적 흐름을 이해하는 단서로서 제임스 스털링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임스 스털링에 관한 작품적 흐름을 바라보면, 현대건축의 흐름을 대변하는 듯,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고, 이런 다양함을 하나로 흡수해 통일성있는 형대로 만들어 가는 저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살펴보아야 한다.
 
스털링은 자신이 다녔던 리버풀 대학에서의 당시 분위기에 대해, '현대건축이 새로워지려는 혁신적인 분위기'를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대학 내에서 토론과 논란의 소용돌이로 비쳤다는 것이다. 스털링이 대학을 다닌 기간이 1945년~50년까지이며, 다시 2년간 지역계획을 연구하는 기간을 갖는다. 이 기간(1945~52년)동안, 유럽대륙으로부터 모더니즘의 회오리가 영국으로 건너와, 리버풀 대학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전쟁이후 주택 부족에 대한 정부의 노력으로 1946년 신도시법 마련에 의해 주거문제가 관심거리가 된다. 스털링도 프리케스트 콘크리트에 의한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계획안 등, 주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실무를 시작하면서 르 꼬르뷰제의 영향을 받았던 스털링은 3년 뒤인 1959년 작품이 레스터 공과대학 건물에서는 러시아 구성주의에 관한 태도를 받아들인 것으로 말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전혀 관련이 없는 듯한 다양한 건축적 형태를 설계해 온 스털링에게서 현대건축의 다양한 측면을 보게 된다. 1970년대 이후의 제임스 스털링의 작품은 형태주의적이며, 최근에는 포스트 모던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그 스스로는 탈근대주의적(포스트모던) 건축은 표면적인 것에만 관련된 것 같은데, 자신은 말하기를 건축이 공간과 깊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스털링의 현대건축에 대한 신축성있는 건축적 신념을 형성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스털링의 작품은 모국인 영국보다 미국, 독일 등 해외에서 더욱 평판이 높다. 스털링은 그의 최근 작품중에서 포그 박물관, 노이에 슈타트 미술관, 테이트 미술관의 증축부분인 클로어 미술관등 세작품을 통해 세계 건축계에서의 스털링의 건축적 위치를 확립하였다. 위의 3작품 뿐만 아니라, 스털링이 작품을 시작한 이후의 모든 과정을 바라보면 다양한 건축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대주의나 탈근대주의(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가 자연스럽게 융합되었고,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다양하고 흥비를 유발하는 형태와 공간을 만듦으로서, 여러 도시에서의 건축물을 완성한 건축적 능력이 평가되었다. 그 자신은 포스트 모더니스트로 설명되는 것을 거절한다. 그는 자신을 포스트 모더니스트라고 생각지 않는다. 포스트 모던 건축에 흥미는 갖고 있지만 이에는 속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근대건축쪽에 보다 공감을 갖고 있는 듯해 보인다.
 
신선한 영감, 일찌기 없었던 혁신성, 자유로운 발상으로 1970년대 건축계에 강렬한 주목을 받았었다. 그가 어떤 배경하에서 작업을 하고 어떤 작품들을 설계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현대 건축에서의 다양한 이슈가 변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아래, 그의 건축적 관심사항에 따라 현대건축의 한 단면을 바라보기로 한다. 스튜트가르트 이래로 미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일본 등에서 국제적인 활동을 하였었다.

그는 왜 작품이 그렇게 많이 변하는가 하는 질문을 최근에 받고는, "변화는 건전한 것이며, 자신의 작품은 많이 변화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그가 초기에 설계한 작품과 현재의 작품사이에는 유사점이 많다고 말한다. "다만 과거의 미래를 왕복하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는 스스로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우연히 어떤 스타일을 취하게 되거나, 어떤 것은 작업과정에 일치되어 하나의 양식이 되기도 하고, 또 심사숙고해서 하나의 양식을 만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가 어떠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의 진정한 건축적 이념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떠한 건축적 배경과 생각이 이렇도록 다양한 것을 만들어 갔을까? 현대건축에서의 국제화를 지향하여야 하는 한국의 건축가들에게도 스털링이 주는 건축적 효과의 교훈이 있다. !!주의라 하는 것은 역사적인 단서나 현대의 건축적 단서를 활용하는 일이기도 하다.
 
스털링은 자신의 작품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능적 해석과 함께 대지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으로부터 "불가피하게 태어나는" 것으로 말하고 있지만, 작품들에는 어떠한 형식주의나 양식이 존재하고 있다. 강력한 "형태적 표현주의"라 할만한 그의 작품들은 60년대 아방가르드로 영웅적인 대접을 받았으며, 현재는 이국적인 것, 꼴사나운 것으로 취급당하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그의 건물들은 우아한 것과는 거리가 먼 작품, 건축적으로 다양한 패션 변화에 따른 희생자쯤으로 여긴다.
 
스털링 스스로도 다른 건축가들은 시리즈 형식으로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자신의 작품은 현대건축의 진화론적 국면을 드러내는 상당히 !!적인 것으로 또한 올리베티 훈련원과 같이 주상적 모던(심지어는 하이테크)으로부터, 라이스대학교 건축대학교의 구상적이거나 가끔 전통주의적인 것에 이르기 까지, 극단적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변화는 개업을 한 이후에도 그랬으며, 슈튜트가르트 미술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극단적인 방법들이 대립을 하면서도 균형을 취하며 같은 건물에서 충돌하고 있다.

형태요소
보행로는 보행인의 흐름을 유도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순환체계를 뜻하며, 원칙적인 구성요소는 접근방법, 입구형성방법, 통로의 구성, 통로와 공간과의 관계, 그리고 통로공간의 구성방식 등으로 나누어진다.
기본형의 추구는 기본형의 그 변형을 유추하는 내용으로서 차원의 변화, 기능적 특성에 의한 변화, 국부강조, 그리고 환경성으로 구분된다.
이중적인 요소란 상충하는 두 형상이 병립하거나 성격상 같이 공존할 수 없는 형태요소가 첨가되어 있는 경우를 뜻하며, 기하학의 형태적 상충은 대립, 포함, 중첩, 분리라는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1. 통로공간은 둘러싸인 공간, 긴 통로공간, 암시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류되었다. 스털링의 작품에서 보행로가 담당하는 역할은 블럭의 형태 및 배치 입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기본형의 추구는 기하학적 기본형에서 부분삭제를 하는 것은 보행공간을 형성하기 위해 채택되며, 기하학적 형태의 조합은 스털링이 지니고 있는 신고전주의적인 경향을 시사해 주고 있다.
3. 이중적인 요소는 기하학적 형상의 대립과 세부장식의 개념적인 대립으로 분류되며, 전자는 건물의 배치, 외부공간의 형성, 그리고 보행로의 형태에 영향을 주지만, 후자는 근대성이란 개념과 역사적 인유라는 개념사이의 대립이라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와같이 스털링은 보행인에 대한 비중을 크게 두고 있으며, 건물의 형태는 기존 건물에 내재된 형태와 작가 자신만의 형태를 접목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스털링의 작품은 유럽 신합리주의 작가들과도 연관되며, 스털링과 이들과 공통된 견해는, 유형과 변형, 기존 도시조직의 유지, 가로와 공공영역의 중시 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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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로 시자 (Alvaro Siza)
Alvaro Siza (본명 : Alvaro Joaquim de Meis Siza Vieira, 1933 ~ )

1933년 6월 25일 포르투갈 마토신호스 출생
마토신호스라는 도시는 포르토 가까이에 위치해 있으며, '포르투스꼴레'라는 고대 로마인들의 정착지 위에 건설된 항구도시로서, '포르투갈'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시이자는 1949년에서 1955년까지 포르토대 건축학부에서 수학하였고, 1954년 자신의 학업을 마치기도 전에, 마토신호스에 4채의 주택을 설계하는 첫 작품을 남겼으며, 같은 해, 그는 포르토에서 개인 설계 사무실을 열었다.
1955년~58년, 건축가 페르난도 타보리 밑에서 일을 했다. 1966년~69년에는 포르트의 미술상급학교 건축학과에서 교편을 잡았고, 1976년에 '건축시공'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버드대 건축설계 대학원, 펜실바니아대, 보고타의 로스안데스대, 그리고 로잔공예대 등의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있다.그 외에도 서반구의 미국, 콜롬비아, 아르헨티나를 비롯하여, 그의 인접국가인 유럽의 스페인, 독일, 노르웨이, 화란,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영국 등의 수많은 대학과 국제회의의 초청강사로도 일해오고 있다.
그는 1962년에 화가 Maria Antonia Marinho Leite와 결혼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현재 건축학을 공부하는 아들 알베로와 연극을 공부하고 있는 딸 조안나가 있다. 부인 시이자 여사는 1973년 사망하였다.
수상경력
국제예술비평협회 포르투갈 지부로부터 건축상 수상(1982)
포르투갈 스페인 '콜레지오드 아키텍터'로부터 금메달(1987)
알바 알트 재단으로부터 금메달(1987)
하버드 대학 도시계획과의 프린스 오브 웰즈상
EEC/바르셀로나의 미스 반 데어 로에 재산의 유럽 건축상
프리츠커 건축상(1992)
발렌시아 대학 명예 박사(1992)
로잔공예대 명예 박사(1993) 등

건축 배경
Alvaro Siza는 포르투칼의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건축가이다. 지역건축의 표현적인 방법으로 그는 자신의 근대적인 형태언어의 발전을 통해 신중한 의뢰를 받는다. 그의 단순한 기하학과 재료의 변형으로 그의 건축은 르 꼬르뷔제, 브루노 타우트, 그리고 미스 반 데 로에에 의한 슈투트가르트의 바이센호프 단지 같은 그런 고전적 모더니즘의 프로젝트를 생각나게 한다. 시자는 아마 포르투칼 주거단지의 인기있는 건축에다 지중해 정취를 가진 새로운 요소를 부가한다. 시자의 힘은 지중해 빌라의 세련된 건축과 다수의 주거단지가 가지는 빈약한 미간의 사이를 연결시키는데 있다. 시자의 작품을 그렇게 중요하게 만드는 것은 형태적인 실험과 공적인 의뢰를 정확하게 결합시키는 이 능력이다. 시자의 양식상으로 가장 발전된 프로젝트는 villa de condo에 있는 1982 Borges & Irmao Bank이다.
 

알바로 시자의 건축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보지 않은 자에게 있어서, 시자는 스케치로 볼 수 있는 멋진 터치에 의해 여러가지 보조선을 교차시킨 평면도에 의해 어떤 전조를 내포한 것 같은 건물의 사진에 의해 잊을 수 없는 건축가이다. 상세한 숫자를 기입한 도면이나 벽 그리고 천장의 기묘한 우묵을 찍은 부분, 사진에서는 그 건물이 촉지성이 풍부하다는 것이 추측된다. 자칫하면 그것은 속 깊은 구멍을 연상케 하는 음영을 띠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벽이나 천장이 휘어서 공간 속에서는 여러겹으로 벽이 겹쳐져 있다. 이것은 육감적인 것 조차 엿보이게 한다. 계단은 공간의 상하를 이어주는 기능적 장치라기 보다는 보행의 유도장치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모서리, 구석에서는 불의의 만남이 잠재하고 있지 않은지, 돌연한 홍소가 기다리지 않는지 세밀하게 굴곡화하면서 연속하는 입면은 건물이 세워지는 장소를 모르는데도 콘테스트의 의의가 깊다는 것을 가리켜 준다. 어디서인지 다품에서 잠적한 정숙을 모두 흡수한 것과 비슷한 애매함과 섬세도가 소프트 포카스의 초점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실물에의 거리에 잔재주가 많은 수다나 정서과다한 생각은 착실하지 못할 것이다. 시자의 여행스케지를 보면 유럽으로부터 남미로, 남미로부터 아시아로, 행선지의 풍경이나 도시 그리고 거리, 여지것의 사람들의 생활단편이 때로 정확하게 때로는 손쉽게 그려지고 있다. 이들을 결합시키면 시자의 건물이미지가 이중노출한 것처럼 떠올라 있을 것같다. 생의 즐거움, 생의 애앙, 생의 괴로움, 생의 가여움, 이런한 생의 현실이야말로 시자의 건축 그것이며, 그 반영이 그의 건축을 때로 확실한 것으로 한 것으로 하든지, 때로는 불확실한 것이 되지 않는지, 그리고, 여기가 그의 건축을 이 밖의 경우에는 볼 수 없는 것으로 할 것이다.

대표작인 듀라트 주택에 나타난 형태요소
1. 팔라디오풍
시자는 ABABA의 고전적인 팔라디오 풍 리듬을 채용했지만, 마지막 A정간(bay)을 빼고 인접한 B정간을 단일층에 적용시켰다. 결국, B가 주출입구가 되는 ABA형상을 갖게 된 것이다.
2. 실내 계획
시자는 실내 계획을 위해서 아돌프 루스를 참조했는데, 대리석으로된 테라스식 계단이 솟아오르는 형태를 보여주는 듀라트 주택의 출입구 홀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3. 꼴라쥬
계단과 대리석 주택이 서로 일치하도록 배치한 것과 자유롭게 서 있는 기둥과 주 거실의 화덕 주변을 특히 강조하는 방법을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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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 (이문열)
사람의 아들 (이문열)

이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생때였던 것 같네요.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너무 어려웠죠.
게다가 어떤 종교에든 믿음이 그리 크지 못한 저로서는 낯설은 얘기들이 너무나 많았죠.
하지만 종교적인것을 떠나,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근본과 초월에 관한 것입니다.
아직 안 읽어 보셨다면 추천해 드리고 싶군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을꺼예요.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었죠.
이문열씨는 정말 현대 최고의 우리나라 작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행보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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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처음에는 고등학생때 장 자크 아노가 만든 영화를 먼저 보았었죠.
그 후 대학생때 소설을 접하게 되었죠.
이 소설은 위트있고, 유머스러우며, 진지하고, 복잡합니다.
중세시대에 대한 내용이라 내용이 좀 어렵고 생소한 단어들도 많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퍼즐게임을 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실꺼예요.
전 이 소설을 읽고 움베르토 에코의 팬이 되어 그 후에 우리나라에 출판되었던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을 모두 읽었죠.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정말 그 많은 자료를 어떻게 모았을까 하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의 번역서를 얘기할 때 꼭 거론되는 번역가 이윤기씨도 언급하고 싶군요.
그는 보다 정확한 번역을 위해서 몇 번을 다시 번역해서 책을 내는 열성을 보여주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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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베르나르 베르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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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 말년에 읽었던 많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개미'입니다.
혹자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좋은 이야기꾼은 못된다고들 하더군요.
저도 어느 정도 그 말에 동의는 합니다.
특히 '개미'의 마지막 마무리에서는 확실하게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죠.
하지만 그의 상상력과 열정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관찰 온 개미에 대한 그의 묘사는 사실적일 수 밖에 없죠.
재미도 있구요.
그의 소설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지식을 추구하고 모든 것들에 대한 이해와 화합을 생각하는 그의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타나토노트'와 '개미혁명'에서도 잘 나타나 있죠.
'개미'는 저의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저에게 중요한 소설입니다.
최근에는 '아버지들의 아버지'라는 소설을 발표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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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아마도 고등학생때였던것 같네요.
국어시간 숙제로 몇편의 소설 중 한권을 읽고 감상문을쓰는 것이 있었어요.
그때 읽었던 책이 '당신들의 천국'입니다.
나병환자들의 삶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는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 이소설은 소외받고 있는 계층과 일반인들과의 대비를 통해서 과연 우리들의현실은 어떠한가 문제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본질에 대한 물음도 같이 하고 있죠.
정말 저자의 말처럼 소설의제목이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우리들의 천국'으로 불릴 수 있을만큼우리들의 공동체 의식이 성숙될 수 있는날이 올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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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별로 큰 인기는 얻지 못했었지만 이 책의 미국에서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었다고 하더군요.
전세계적으로 이 책은 550만부가 팔렸다나 뭐라나...
아무튼 이 책은 묘한 매력을 줍니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어려운 면도 있는 것 같아요.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사상을 소개하는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새로운 천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앞으로 어떤 사상이 나타날지 궁금하기도 하죠.
이 책은 그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자는 정신력과 통찰력, 그리고 영적인 부분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사회학, 카운셀링을 전공하고 정서 장애 치료사로서도 오랜 활동을 했다고 하더군요.
이 책의 후편격인 '열번째 예언'도 출판되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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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최인호)
길 없는 길 (최인호)

최인호씨의 많은 소설들이 영화화되거나 드라마화 되었죠.
겨울나그네', '깊고 푸른 밤', '잃어버린 왕국' 등등...
그만큼 그의 작품은 드라마적인 요소를 많이 느낄 수 있고 재미있습니다.
'길없는 길'은 원래 중앙일보를 통해서 볼 수 있었던 연재소설이죠.
저자가 경허의 법어집을 읽고 영감을 얻어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 이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불교의 사상을 조금은 미스테리한 전개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전 4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편은 정말 책을 손에서 땔 수 없을 정도로 흥미있고 속도감있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2, 3, 4권으로 가면서 조금은 지루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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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문 (이윤기)

하늘의 문 (이윤기)

그 어려운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들을 번역하면서 번역가로 널리 알려진 이윤기씨의 장편소설인 '하늘의 문'은 작가의 시점으로 마치 자신의 얘기를 자서전적으로 서술하는 듯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가 성장하면서 겪고 보았던 주변의 얘기들이 잔잔한 전개로 이어지고 있죠.
번역가답게 언어에 대한 얘기도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그가 저자가 번역했던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의 느낌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다운 상상력이나 극적인 요소는 좀 약한 편이죠.
이책을 읽고 나면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시게 될 것입니다.
총 3권으로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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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정호승)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정호승)

이 시집은 제가 아는 분 중 한분께서 시집 중에서 몇편의 시를 읽어주셔서 알 게 되었죠.
사실 전 시는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홀로서기'를 고등학생 때 좋아한 이후로는 시집을 처음으로 샀었던 것 같아요.
정호승님의 시를 읽다보면 매우 절제된 듯 하지만 정말 가슴이 메어지도록 애절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미안하다 -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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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 (채지충)
철학은 바람을 타고 (채지충)

이 책은 대학생때 한 선배로부터 선물을 받아서 알게 되었습니다. 노자의 도가사상을 이어받은 열자의 사상을 쉽게 표현한 만화책이죠.
이 책을 그린 채지충은 열자 말고도 중국의 수많은 고전들을 만화로 만든 아주 유명한 분이라고 합니다. 이 책이 그 시리즈중 한 권이죠. 여러 시리즈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표현된 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각 이야기마다 원전과 풀이를 실어서 이해를 돕고 있기도 하죠. 채지충의 고전만화시리즈가 여러 출판사에서 나오기도 했고 한동안 꽤 인기도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네요. 중국 고전을 쉽게 접근하고 싶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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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빠라기 (에리히 쇼일만)
빠빠라기 (에리히 쇼일만)

이 책은 투이아비 추장의 연설을 독일의 에리히 쇼일만이 편집하여 낸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부시맨(God Must Be Crazy)' 이 생각이 나더군요. 부시맨이 도시 한복판에 온다면 이 책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죠.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글들은 많습니다. 사회가 발달해가면서 얻는 것도 많겠지만 그만큼 잊는 것도 많을 것입니다. 다만 문명의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런 것을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겠죠. 그런 우리들에게 이 책속의 한 원시인의 시점을 통해 바라본 문명은 우리가 문명의 이기를 즐기는 가운데 과연 어떤 것들을 읽어가고 있는 것인가 사색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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